재난 상황, 가장 먼저 지역을 발견하고 기록하다 : 성서공동체FM

#마을공동체미디어 #이주민방송MWTV

2021-01-28

한지희 (이주민방송)

 

2020년 2월, 
처음 겪는 재난 상황 속에서 건강보험이 없는 이주민에게 마스크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정부 정책 등이 나오면서 저를 포함하여 제가 속한 이주민방송의 활동가분들이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여 잠시 모든 활동을 중단하였고, 사무국은 재택근무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끝없는 고민을 하였지만, 재난 속 한없이 작아짐을 느꼈고, 무력감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저의 무력감이 커질 즈음, ‘이럴 때일수록 이웃 간 소통의 끈을 놓치면 안 된다.’, ‘정보에 소외되는 이가 없어야 한다.’라며 누구보다 활동에 앞장서 목소리를 내던 단체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2월, 기하급수적으로 확진자가 늘고 있던 대구에서 말이지요. 
바로 대구에 있는 성서공동체FM입니다. 

 

1년이 지난 지금,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공포감이 가장 고조되었던 2월~3월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뎌냈으며,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는지 말입니다. 그래서 성서공동체FM의 김상현본부장님께 직접 물어보았습니다.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성서공동체FM 방송본부장 김상현입니다. 
저는 2004년에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상제작 교육을 듣게 됐어요. 미디액트에서 주관하는 퍼블릭 액세스 실현을 위한 찾아가는 미디어 교육, 뭐 그런 이름이었는데, 대구에서 공동체 미디어 교육으로는 처음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제가 백수였던 터라, 딱히 안 들을 이유가 없어서 의외로 개근까지 해가며 열심히 참여해버렸어요. 그러다 보면 교육 수료작이 완성되어있잖아요?! 그리고는 ‘아! 영상이 엄청 힘이 세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게 됐죠.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영상으로 만들었더니, 그동안 소위 ‘말’로 그렇게 싸워 왔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되고 소통되고 또 공감받고 지지받는 경험을 해 버린 거죠. 재미있었어요. 계속 더 배우고 싶었고. 완전 백지에 이제 때 좀 묻혔다 할 수준의 제가 겁 없이 다음에 도전한 영상이 성서공동체FM의 개국부터 거의 1년 과정을 기록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당시 성서공동체FM 개국 주체였던 선배들에게 미디어 운동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됐죠.

 

이후에 대구에서 공동체 미디어 활동을 하다가 성서공동체FM 방송본부장 역할을 맡게 된 건 작년 3월부터예요. 그리고 요즘도 가끔은 재미있어요. :)

 

 

 

성서공동체FM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희를 성서FM이라 소개하면 처음 듣는 분들은 기독교방송인가? 하시더라고요. 
성서공동체FM이 위치한 곳이 성서지구예요. 예전에 대구읍성의 서쪽이라서 그렇게 불렸다고 하는 설이 있어요. (지명의 유래가 정확하지는 않아요.)

 

성서공동체FM은 대구 성서지역에서 라디오 주파수 FM 89.1MHz를 통해 들을 수 있는 공동체라디오방송국이고요. 하루에 16시간, 현재 27개의 정규프로그램이 편성되어있고 대부분은 자원활동가-저희는 방송회원이라고 하는데요. 시민제작자들에 의해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어요. 

 

2005년 8월 22일, 공동체라디오 역사상 최초로 개국을 했다는 게 저희만의 부심이기도 한데, 저희가 개국 때 내세웠던 두 가지 슬로건이 “이주노동자와 지역주민의 자치 방송” , “듣기만 하던 라디오 이제 우리가 말한다.”예요. 1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이 가치를 유효하게 지니고 있습니다. 

 

 

 

2020년 2월~3월 당시 대구에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사건∙사고들이 많았잖아요. 저는 뉴스로만 소식을 접하다 보니 ‘심각하구나~’라고 느낀 정도였지 대구에 계신 선생님들과 똑같은 체감은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당시 성서공동체FM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대구 첫 확진자가 발생한 날이 2월 18일이에요. 날짜가 정확히 기억나네요. 
그날 방송 녹음 중이던 팀이 있었는데, 한 분이 열이 나고 감기 기운이 있다는 이유로 전체가 녹음을 중단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녹음 예정이던 발달장애인 청년들이 제작하는 방송은 잠정적으로 보류하자는 연락이 왔어요. 장애인이 코로나에 감염되면 비장애인보다 훨씬 더 문제가 심각해진다는 인솔 선생님의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2월부터 첫 방송을 시작하려 했던 신규 프로그램도 기약 없이 연기하자고 연락이 왔어요. 모두 그날 하루에 일어난 일입니다. 

 

대부분 그렇지 않으셨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코로나 상황이 이렇게까지 모든 일상을 덮칠 거라는 예상은 미처 못했었어요. 방송국에 손소독제와 일회용 마이크 커버를 비치해두는 정도의 기본 방역만 하던 상황이었는데, 대구 첫 확진자 발생 이틀 만에 주요 대학병원 응급실이 모두 폐쇄됐어요. 의료체계가 붕괴하니 확진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시민이 공포에 빠져들게 된 것 같아요. 

 

우리 방송국 프로그램 대부분은 시민제작자들이 모여 제작하잖아요. 환기가 안 되는 스튜디오에서 장시간 녹음을 해야 하는데, 방송국에 확진자가 다녀가는 일이 발생하는 건 이상할 것 하나 없는 상황이더라고요. 모든 프로그램의 녹음을 중단하자는 결정을 내렸어요. 무엇보다 코로나는 사람들을 모이지 못하게 하니까요. 

 

성서공동체FM이 코로나 거점병원으로 지정된 동산병원 근처예요.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구급차 소리에 넋을 잃고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타 방송국 뉴스를 바라보며 한숨 쉬는 일이 다였어요. 사흘이 지나자 대구와 청도가 감염병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됐고 이제 사태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었잖아요. 더는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공동체에 기반한 방송이라면, 공동체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무엇이라도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코로나19 특별생방송>을 편성했었습니다.

 

 

<코로나19 특별 생방송> 성서공동체FM 유튜브 채널 (사진 제공 : 성서공동체FM)

 

 

 

구체적으로 당시 어떻게 <코로나19 특별생방송>을 기획하게 되셨고, 운영∙진행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채널 영향력이 매우 미미한 우리가 방송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겠다고 생각했다면 아무것도 시도 수 없었을 거예요. 다만 우리가 우리의 공동체가 겪고 있는 재난을 우리가 있는 곳에서 기록하는 것만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최소인원 3명으로 생방송 팀을 꾸렸어요. 그리고 우리 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수십 명의 자원활동가(방송회원)는 각자의 마을에서 각자의 일터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들을 알려주는 리포터 역할을 해주었어요. 단체카톡방에서 생방송 진행을 위한 소식들을 모았는데요. 예를 들어 우리 동네 자영업자들을 돕기 위한 식자재 소진 소식, 공적 마스크를 사려고 몇 시간씩 줄을 서 있었던 우리 동네 우체국 앞 상황 등의 소식들을 전해주었었죠. 또 주변에 돌고 있는 가짜뉴스를 올려주면 누군가는 검증하고 이것은 다시 방송으로 연결되었어요. 가끔은 악의적인 언론기사들에 함께 공분도 하고 가슴 따뜻한 소식에 함께 기뻐하기도 했었죠. 

 

그렇게 월·수·금 하루에 1시간씩 생방송을 4주간(3월 18일까지) 진행했고 생방송에서 주로 다룬 내용은 재난에 취약한 사람들의 이야기, 공동체의 위기를 공동체의 온기로 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심이었어요. 전화 연결 인터뷰 위주로 진행했고 방송마다 유튜브 채널에 에피소드를 올렸어요. 

 

 

 

제가 생각한 <코로나19 특별생방송>의 가장 큰 의미는 기존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정말 나에게 필요한 가까운 소식, 배제된 이웃, 소수자분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주셨다는 것 같은데요. 진행하시면서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당시를 떠올리면…, 정말 혹독했어요. 정말로 공포와 혐오의 시간이었어요. 

 

나의 안위는 오로지 KF94 마스크에 의지한 채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죠. 상점은 문을 닫았고 거리는 텅 비었어요. 확진자는 곧 특정 종교집단으로 낙인되고, 대구사람임을 속이고 다른 지역 병원을 찾아갔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죠. 쪽방촌 주민들은 급식이 끊겼고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은 굶었어요. 숟가락을 들 수도 없는 중증장애인은 자가격리에 들어가면서 죽음을 떠올렸어요. 감염의 위험마저 감수하는 마스크 행렬에 이주노동자는 줄서기조차 할 수 없었고요. 

 

일상이 멈추면서 그동안 보이지 않던 공적 시스템의 민낯이 드러났고 행정과 정치가 우왕좌왕하던 그 틈을 선의의 시민들이 묵묵히 메워 주었죠. 김밥을 말고 반찬을 나르며 마스크를 만들고 의료봉사를 하고. 저희는 저희가 할 수 있는 일, 이웃과 공동체의 안부를 묻고, 공동체의 위기를 온기로 채우는 사람들과 공동체들을 방송에 담는 역할을 했어요. 저희가 재난 상황이라서 특별히 소수자분들의 이야기를 더 담아내 보자 했던 건 아니었고 평소에 관계 맺고 있던 이웃들의 안부와 공동체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왔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코로나19 특별생방송>을 하면서 저희가 알게 된 건, 
공동체미디어가 재난을 맞는 지역공동체들의 이야기를 가장 먼저 발견하고 기록할 수 있는 매체임을 확인했어요. 이건 재난 시에 갑자기 발휘되는 것이 아니고 공동체미디어가 지역공동체와 밀착해 있으면서 신뢰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점도요. 

 

공적마스크판매 첫날_성서우체국 앞 (사진 제공 : 성서공동체FM)

 

 

 

<코로나19 특별생방송>을 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실까요?

 

공적 마스크를 판매하는 첫날, 저희도 혹시 마스크를 살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있고, 취재차 방송국 근처 성서우체국에 가봤어요. 마스크를 판매한다고 했던 5시 이전에 이미 번호표를 모두 나눠준 상황이더라고요. 할머니 한 분이 그때 오셨는데 마스크를 구하실 수 없는 거죠. 그 할머니는 버스 타는 것도 위험하다 해서 30분 넘게 걸어오셨대요. “관절이 아파 걷지도 못하는데 힘들게 왔더니 마스크 하나 못 구하고 어떻게 또다시 걸어가느냐, 젊은 사람들은 인터넷이라도 살 수도 있는데 나이든 우리는 우야란 말이냐”며 저희 마이크에 하소연하셨어요.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던 젊은 여성분이 자신의 번호표를 할머니에게 주시더라고요. 

 

또 이주노동자들이 마스크 구하기가 어렵다는 방송을 한 다음 날은 직접 만든 마스크 56장을 방송국으로 보내주신 분도 계셨고요, 정말 많은 사람이 곳곳에서 기꺼이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저희 방송을 들으면서 고립감을 함께 극복할 수 있었다는 말씀들을 해주시더라고요.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그걸 담아내는 공동체미디어가 있다는 것은 재난을 극복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재난회복력에 촉매 역할은 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었어요. 
 

 

시민이 직접 만드는 라디오 캠페인_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응원 메시지 (사진 제공 : 성서공동체FM)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나 다양한 마을단체들에서 성서공동체FM 응원 사진을 찍어 올린 것을 보게 되었는데요. 이런 것이 연대인가?!!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코로나라는 재난을 맞으면서 시민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 시민이 시민에게 제안하는 이야기 등 시민이 직접 라디오캠페인을 만들자는 취지로 공공캠페인을 기획했었어요. 그때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에서 응원 영상을 보내주셨고 라디오캠페인으로 방송도 했었죠. 또 ‘광주문화콘텐츠그룹 잇다’에서도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시고 전화 인터뷰도 연결했었어요. "1980년 5월 고립됐던 광주가 외롭지 않았던 이유는 뜻을 함께한 수많은 연대의 손길 덕분"이었다며 “끊임없이 교류하고 연대하면서 같이 극복하려는 마음을 보낸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방송 중이던 저희가 울컥할 정도로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전국의 많은 시민단체와 공동체들이 먹거리니, 물품을 대구로 보내주셨잖아요. 그중에 특히 전남 마을공동체와 활동가들이 보내준 행복나눔꾸러미에 적혀있던 한분 한분의 이름을 부르며, 그 이름들을 꼭 기억하겠다 했던 대구시민 김진아 씨의 라디오캠페인도 인상적이었어요. 

 

 

 

<코로나19 특별생방송>을 진행하신 이후 교육프로그램을 준비하시거나 자체 제작되는 라디오 프로그램들에 변화나 영향이 있으셨을까요? 

 

확진자가 한자리 숫자로 떨어지고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고 <코로나19 특별생방송>을 중단하고 평상시 제작시스템으로 돌아갔어요. 방송회원들은 톱니바퀴처럼 녹음 일정을 잡고 각자의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는데요. 지난 <코로나19 특별생방송>에서 공동으로 정보를 교류하고 프로그램을 함께 만든 것도 저희에겐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전국적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는 요즘이지만 앞으로는 모든 프로그램의 녹음을 중단하는 일은 이제 없을 것 같아요. 저희가 성장한 지점이 아닐까 합니다. 

 

코로나19로 처음 사망하신 분을 혹시 기억하세요? 청도대남병원에서 20년 넘게, 코로나 이전부터 이미 격리된 삶을 사셨던 60대 남성. 당시 그분 몸무게가 40kg 정도였다는 것. 이제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어요. 눈에 보이게 드러나는 건 아니지만, 확정할 수 있는 무엇이 축적된 건 아니지만, 우리가 어떤 변화를 겪었고 얼마나 능동적이었는지는 우리가 알고 있죠. 

 

코로나19 특별생방송 제작진 (사진 제공 : 성서공동체FM)

 

 

 

서울에서도 정말 많은 단체가 코로나19에 대응하여 각자의 자리에서 활동하시는 것을 보고 소극적이었던 제가 좀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마을미디어와 공동체 미디어는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본부장님께서는 코로나19뿐만 아니라 다양한 재난 상황 속에서 마을미디어, 공동체미디어의 역할과 방향이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도움 주는 곳은 많은데, 도움받을 곳을 찾기 힘들다” 어처구니없지만 재난현장 일선의 목소리였어요. 재난 시 행정과 정치가 모든 걸 다 해결할 수 없고 작은 단위의 공동체들이 해야 할 역할이 분명 있다는 것을 우리가 재확인했잖아요. 마을공동체미디어가 이런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보건사회재난이 경제재난이 되면서 ‘내가 어느 지역에 살고 있는가’가 내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돼버렸어요. 제 지인 한 분은 ‘대구를 떠나고 싶다’라는 생각을 진심 구체적으로 했다고 하는데요. 공동체의 성숙도 문제였어요. 저는 마을공동체미디어가 지역공동체를 조금 더 건강하게 성숙시킬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공동체가 당면한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실천의 영역이기도 하고요.

 

그러려면 두 가지가 필요한데, 
하나는 앞서 말씀드렸던 공동체미디어가 공동체의 안부와 안녕을 묻는 일들을 공동체 네트워크를 통해 계속 조직해야 한다는 거고요, 또 하나는 공적 지원시스템이 확장돼야 한다는 점인데요. 일본의 경우, 지진과 같은 재난이 발생하면 지역공동체 라디오의 활약이 대단하잖아요. 전국 방송이나 광역권방송이 제공할 수 없는 지역밀착형 생존 정보를 제공하고 주요한 소통통로 역할을 하니 재난 시에는 100W까지 출력을 허용해주기도 하듯이. (현재 성서공동체FM은 3W) 마을공동체미디어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공적 지원을 확대하는 일에도 계속 힘을 기울여야죠. 지금까지 안 했던 것도 아니고 쉽게 되는 일은 아니지만, 코로나19로 미디어 활용과 요구가 높아진 이때 계속 말해봐야죠. 공적 시스템으로 화답할 때까지...

 

 

 

2021년 성서공동체FM 어떤 고민과 목표를 가지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저희 얼마 전에 이사했어요. 개국 이후 처음으로 이사를 해봤는데, 거의 방송국을 새로 짓는 수준이었어요. 만만치 않더라고요. 아직도 마무리는 덜 됐고요. 그래서 올해 고민과 목표는 이제부터 함께 논의하고 준비해야 해요. :) 

 

저희가 작년에 재난 유공으로 방송통신위원장 표창장을 받았어요. 대구 마을공동체 어워드에서는 대구시장상을 받았고요. 아마 코로나19 특별생방송 덕분이겠죠. 그동안 성서공동체FM과 함께했던 모든 분의 노고가 한땀 한땀 녹여져 있는 거라는 생각에 값지고 영광스러운데 아쉬운 점이 있어요. 2020년에 ‘재난 이후 재난을 말한다’라는 장편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어요. 재난의 중심에 있던 대구시민들의 경험을 기록하고 재난 이후 지역공동체가 풀어가야 할 과제들을 말하는 내용인데요. 출연한 한분 한분의 이야기가 정말 감동적이고 소중한 내용이라서 이 방송을 많은 사람이 들으면 좋겠다 싶었거든요. 밀려오는 업무를 쳐내느라 그만큼 애쓰지 못했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들었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더 해볼 수 있었는데 부족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올해는 우리 방송국이 제작하는 좋은 콘텐츠들이 더 많은 사람에게 소개될 수 있도록 다양한 형식과 채널로 전달하는 방법을 마련해 보려고요. 제 개인적인 고민과 목표예요. :) 

 

 

 

2021년, 해가 바뀌었어도 외출 시 마스크를 쓰고, 어디를 가든 거리 두기를 하는 풍경은 변한 것이 없네요.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 마을미디어와 공동체미디어는 한 발짝 나아갔다는 기분이 드는 건 저뿐일까요?

 

2020년 코로나19 속에서 이웃 간의 소통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정보에 소외되는 이가 없도록 각 마을 활동가분들의 다양한 시도들로 쌓아 올려진 노하우로 마을이 더욱더 단단해짐을 느낍니다. 또 마을미디어와 공동체미디어의 역할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를 확실히 보여준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진행하며, 김상현본부장님이 하신 말씀 중 공동체미디어가 재난을 극복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재난회복력에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저에게는 가장 와닿았습니다.

 

해가 바뀌었어도 변하지 않는 상황들로 코로나 블루를 겪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2021년은 마을미디어와 공동체미디어가 코로나 블루를 회복하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더욱 건강한 소통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

 


 

한지희(이주민방송MWTV)

현재, 여기, 한국 사회에서 살고있는 모든 사람이 그리고 나와 내 친구들이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평등하고 즐거운 삶을 살 수 있기를 꿈꾸며, 오늘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담고,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