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 인터뷰] 마을미디어 대표선수를 만나다 7회 – 마을미디어뻔 박수영 책임PD <1부>

 


[편집자 주] 2017 마을미디어 성과모델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매체 형태로 자리 잡은 마을미디어들의 성장과정을 정리해본다. 1회 강북FM, 2회 강서FM, 3회 와보숑, 4회 동작FM, 5회 성북동천, 6회 용산FM에 이어 7회 인터뷰 대상은 마을미디어뻔이다. 마을미디어뻔 박수영 책임PD와의 인터뷰를 1, 2부로 나눠서 싣는다.


 

창신동라디오덤 조은형 국장이 만난 일곱번째 대표선수는 중랑구 면목동에 위치한 마을미디어뻔의 박수영 책임PD이다. 박수영 PD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을미디어뻔이 자리잡게 된 과정과 그 과정에서의 특별한 운영철학을 만나볼 수 있다. 마을미디어뻔은 초기부터 탄탄한 운영진을 갖추지는 못했으나, 공간 등의 안정적 기반으로 교육사업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지금의 운영체계를 만들 수 있었다. 2014년 마을미디어 대상 수상 경험은 ‘가늘고 길게’의 철학을 ‘굵고 길게’로 바꾸어놓았다.

 

어느 지역에서나 마을미디어는 생존하기에 급급한 처지다. 마을미디어뻔은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마을 전체의 성장에 헌신하고자 한다. 운영에 안정성과 지속성을 1순위로 두어 마을에 신뢰를 주고자 노력했고, 행사 음향 등 마을 활동의 기술적 문제들에도 솔선수범 나서고자 한다. 중랑구의 다른 마을미디어와 경쟁하기보다는 네트워크를 형성해 함께 성장하고자 하는 큰 포부를 가지고 있다. 마을미디어뻔이 앞으로도 이런 역할을 계속하며 중랑구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무엇들이 필요할까? 아마도 마을미디어 모두의 과제일 것이다. 인터뷰를 보며 함께 고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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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미디어뻔 팟캐스트

http://www.podbbang.com/ch/6601?e=22451387


▲왼쪽부터 조은형(창신동라디오덤), 박수영(마을미디어뻔 책임PD)

 

조은형(창신동라디오 덤 국장, 이하 조) : 지금까지 활동 과정을 돌이켜보았을 때, 마을미디어 뻔의 변화의 시점을 구분하면 어떻게 될까요?

 

박수영(마을미디어뻔 책임PD, 이하 박) : 2012년 마을미디어 교육 프로그램으로 처음 시작했는데, 그 때부터 2014년까지가 씨앗기인 것 같아요. 교육을 계속 하면서 참여자 조직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운영진도 어느 정도 모실 수 있었어요.

그러다보니 이 정도면 독립적으로 단체 운영 가능하겠다 싶어서 2014년 마을미디어 뻔으로 임의단체 등록을 했어요. 그 때부터 마을미디어 시상식에서 대상받을 때, 그러니까 2015년까지는 새싹기예요. 단체를 만들다보니 부침도 있었지만 이 시점부터 상황이 어떻게 되든 일주일에 방송 3꼭지는 나가더라고요.

대상을 받고 난 이전 이후에 많이 달라졌는데, 대상 받고난 후에 새로운 것을 해보려고 했던 시기가 성장기입니다. 올해까지가 성장기인 거죠. 마을에 어떻게 뿌리내릴지나 실험 등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활동해오다보니 마을미디어뻔을 하는 사람들이 누구고 뭘 할 수 있는지를 주민들이 알기 시작하고, 도움을 청해오기도 해요.

 

▲박수영 마을미디어뻔 책임PD

 

일상적 소통을 위한 도구로 미디어 선택

 

조 : 주민들과 접점이 많아지는 걸 성장으로 보신 것 같아서, 시기 구분에서 나름의 철학을 볼 수 있었어요. PD님이 생각할 때 뻔의 특징을 무엇이라 보시나요?

 

박 : 저희가 출발했던 계기가 지역에서 시민단체 하던 모임에서부터였어요. 시민 활동 하던 모임인데 주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획이 부족했어요. 어떻게 일상적으로 주민을 만날까 고민했는데 미디어를 접하게 되었고 시작하게 된 거죠. 처음 출발부터가 어떻게 시민과 일상적 소통을 할 수 있나 하는 것이었으니 성장 또한 그 단계를 확보하는 것이었던 겁니다.

 

조 : 그러면 애초부터 주민들과 만나는 게 중요한 목표였던 것인데, 여러가지 방법 중에 그래도 마을미디어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박 : 개인적인 이유로는 이거 하기 전에 신문쟁이였어요. 언론사 일 하다보니까 이건 내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거죠. 일상적으로 주민을 만나면서 서울시에서 지원도 나올 수 있다 보니까 운과 때가 잘 맞았던 겁니다.

 

조 : 주민 분들과 일상적으로 만나고 필요를 깊게 이해하는 방식으로 마을미디어가 의미가 있다.

 

박 :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마을미디어라는 건 주민을, 그러니까 미디어 환경에서 배제된 분들을 불러내서 어떻게 미디어에 노출시키는지가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마을미디어의 본령입니다.

 

 

씨앗기, 시행착오를 거쳐 초기 멤버들을 만나다

 

조 : 초기부터 하나씩 짚어볼까요? 많이 힘이 되고 힘들었던 것들이 어떤 것인지. 아까 말하신 것처럼 초기 정착이 좀 어려웠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박 : 씨앗기가 좀 길었던 것은,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사업 시작했던 것은 제 개인적인 상황이 컸어요. 내가 이걸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고 시민모임 운영위원들은 네가 하고 싶다면 해봐라였던 건데, 미디어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교육을 통해 같이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을 발굴하고 싶었어요. 교육이 길어지면서 주민들이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씨앗기 2년이 길다고 말씀하시지만 정말 짧은 기간에 원하는 사람들을 만났다고 생각해요. 지역에 비슷한 고민과 생각을 하던 분들이 있었고 교육으로 붙어주셨기 때문에 2년 안에 가능했던 거죠.

 

조 : 힘든 초기단계에서 포기하지도 않고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주요한 요인이 있다면 뭔가요?

 

박 : 정말 운이예요. 1차 교육 때는 주민들 모을 방법이 없었어요. 교육생이 모여야 주민을 만날 수 있는 상황이었고, 그러다보니 지역 내 활동가분들 통해서 교육생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시간을 내주시기는 하지만 교육시간 외에는 시간이 없는 바쁜 활동가 분들이었어요. 첫 해 교육은 사실 실패라고 보았죠. 남을 수 있는 분들이 없었기 때문에.

이후에는 현수막 붙이고 동네에 붙이고 이런 노력들을 했었는데 그렇게 모인 분들이 지금 활동하시는 분들이에요. 기존 활동가들이 아니고 동네에서 홍보물 보고 이런 거 하면 재밌겠다 하셨던 분들. 이런 분들이 붙어주셨기 때문이죠. 사업도 있었고 사람도 있었고. 이런 삼박자가 잘 맞았어요.

 

조 : 인적관계로 섭외한 활동가들은 남기 힘들다는 교훈을 배우셨고. 결국 발로 뛰면서 사람을 모은 것인데 다른 지역에도 그런 욕구를 가진 분들이 있을 거예요. 그런 분들과 만나는 것은 운이 아니라 필연이 아닌가 싶습니다.

 

▲조은형

 

 

가늘고 길게, 은근과 끈기로 주민의 신뢰를 얻다

 

조 : 씨앗기를 버티면서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뭘까요?

 

박 : 여러 가지 있을텐데.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감일 거예요. 초반에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이 붙어야 하는데. 그 분들이 붙을지 안 붙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하려니까. 개인적으로는 대표PD로서 뻔뻔하지 못한데, 낯가리고 그런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미디어를 한다는 게 많이 힘들었어요.

 

조 : 본인 성격을 이야기 하셨는데. 보통 국장님들이 활달하거나 사람들 만나는 걸 즐기는 스타일인데 그렇지 않으신 것 같아요. 그럼에도 지금까지 활동이 이어지는 것은 본인의 강점이 있을 거예요. 본인의 강점을 좀 얘기해 봐주세요. 꼭 외향적이지 않아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박 : 굳이 이야기를 한다면 참을성이 강해요. 오늘 안 되면 내일 되겠지. 아니면 모레는 되겠지. 내가 하고 있으면 알아서 와주겠지 하는 믿음이 있어요. 단체 만들 때도 성과가 어떻게 날지는 모르겠지만 10년은 하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주민들이 알고 와주니까. 그런 신뢰감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 친분을 쌓는 건 어려워도, 말은 잘 못하고 서툰 사람이라도, 최소한 오래도록 저 일을 해 나갈 것이라는 믿음이라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신문쟁이 하면서 인터넷이나 컴퓨터나 장비에 대해서도 기술적으로 알다보니 상대가 그런 면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게 해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것들이 기반이 된 거죠.

 

조 : 제가 인터뷰를 하면서 돌아다니다보니까 혼자서는 운영이 안 되고 같이 활동하는 멤버들. 코어 그룹이 형성되는 게 중요하던데 여기는 언제 어떻게 그것이 구성되었는지 궁금해요.

 

박 : 그게 구성되는 과정이 새싹기였던 거예요. 처음에는 저의 개인적인 욕구나 단체의 필요가 있었지만 코어그룹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어요. 그런 사람이 필요했고 교육을 통해 사람들을 계속 만났는데. 운이 좋아서 제가 없는 재능을 가진 분들이 와 주셨어요. 이를테면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지역에서 뭔가 놀 것을 찾고 있다가 와주었고, 표현하고 싶었으나 기회가 없었던 분들이 와주셨고. 또 때마침 차도 한 대 얻게 되고. 저희 단체 활동하던 분들이 지원을 해주셨었어요.

 

▲황성희 (마을미디어뻔)

 

2014 마을미디어 대상 계기로 새로운 실험 시도

 

조 : 그러면 새싹기의 꽃을 피운 대상 이야기를 해 볼까요? 보통 새싹기에 대상을 받는다고 생각 안 하는데 그걸 새싹기라고 부르셨어요. 대상을 받으신 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박 : 대상에는 양가적인 감정이 들어요. 솔직히 말하면 이 대상을 저희끼리는 쥐약이라고 불러요. 먹을 때는 달지만, 먹고 나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요. 대상을 받게 된 건 짧은 시간에 운영조직 만들었고 모델이 갖추어지면서 어느 정도 성과를 냈고, 나름대로의 철학도 있어서 인 것 같아요. 그런데 저희가 아무리 가늘더라도 길게 가는 게 목표였는데, 이제 굵게 가는 걸 고민할 수밖에 없어진 거예요. 굵은 흔적을 어떻게 남기지?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2015년 이후 사업계획들이 무리하게 가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또 하나, 저희에게 계기가 없었으면 계속 가늘게만 갈 생각을 했을 거고 시스템화 고민을 못했는데, 대상 이후로 우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보다 지속가능한 모델을 고민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실험들을 할 수 있었어요. 실패의 경험이 정말 중요해요. 이번에 이렇게 했으니 다음에 이렇게 저렇게 해보자 할 수 있으니까. 실패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요.

 

조 : 궁금한 게, 2년 동안의 시간이 그랬다고 하셨는데, 대상정도를 받았을 정도면 특별한 기반이 않았을까요? 예를 들어, 여기는 초기부터 공간이 있지 않았나요?

 

박 : 그 영향이 컸죠. 라디오가 사실 입만 있으면 할 수 있다고 얘기 많이 하지만 기반이 없으면 안 되는데, 몸만 와서 떠들기만 하면 될 수 있게 기반이 구축되어 있으니까 욕구를 가진 분들이 모일 수 있었던 거예요. 그게 확립된 시기가 2015년이죠.

 

조 : 기존에 활동하는 공간이 있고 그 공간 한 켠에 녹음 시스템을 갖추었다는 것이 중요 요인으로 느껴져요.

 

>>> 2부에서 계속


정리: 이세린

사진: 이혜진

녹음·편집: 황성희 (마을미디어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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