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 인터뷰] 마을미디어 대표선수를 만나다 4회 – 동작FM 양승렬 방송국장 <1부>

By | 2017-10-23T21:41:17+00:00 10월 19th, 2017|카테고리: 2_인터뷰, 블로그|Tags: , , , |0 Comments

 


[편집자 주] 2017 마을미디어 성과모델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정기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매체 형태의 마을미디어 15곳의 성장과정을 정리해본다. 이 프로젝트의 인터뷰어는 창신동라디오덤 조은형 국장이 맡았다. 1회 강북FM, 2회 강서FM, 3회 와보숑에 이어 4회 인터뷰 대상은 동작FM이다. 양승렬 방송국장과의 인터뷰를 1, 2부로 나눠서 싣는다.


▲왼쪽부터 조은형(창신동라디오덤), 신소연(동작FM), 양승렬(동작FM)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가 만난 네 번째 마을미디어 대표선수는 동작FM의 양승렬 방송국장이다. 노량진역 근처 지하 공간에 위치한 동작FM은 타 방송국의 부러움을 살만큼 광활하고 근사하다. 그 손때 묻은 공간에서 동작FM의 화려한 역사와 현재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 핵심부에 있는 양승렬 방송국장은 2012년 동작FM 출발부터 지금까지 무려 6년째 동작FM 살림을 맡고 있다. 오랜 시간 운영을 담당한 만큼 풍부한 경험과 지혜가 느껴진다. 인터뷰엔 영원히 풀리지 않는 문제인 관계, 재정, 운영체계 등에 대한 양승렬 국장의 유용한 조언이 담겨있다. 그리고 인터뷰 내내 마을미디어의 도약을 위한 날카로운 지적과 제안을 서슴지 않았는데, 인터뷰를 통해 함께 고민을 나누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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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FM 팟캐스트

http://www.podbbang.com/ch/6160?e=22417851

창신동라디오덤 팟캐스트

씨앗기, 새싹기를 거쳐 성장기로 … 운영위원 역할 커

 

조은형(창신동라디오덤 국장, 이하 조): 지금까지의 활동을 쭉 돌아보셨을 때, 동작FM이 질적인 변화를 보였다고 생각하는 시기가 있을 것 같아요. 시기를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요?

 

양승렬(동작FM 방송국장, 이하 양): 2012년 가을, 서울시 마을미디어활성화사업 중 <우리마을미디어문화교실> 2기에 선정되어 교육을 열었어요. 그때부터 2013년 상반기까지가 동작FM의 씨앗기가 아닐까 싶어요. 씨앗기에 교육을 시작해서 참여자와 주민DJ가 모였고, 방송국이라는 조직형태를 갖추게 되었어요. 그리고 2013년 하반기부터 2014년까지가 새싹기, 2015년부터 지금까지가 성장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조: 발달단계를 씨앗기-새싹기-성장기로 구분하셨네요. 새싹기와 성장기 얘기도 들려주세요.

 

양: 새싹기가 굉장히 중요한 시기 같아요. 2014년은 운이 잘 터졌던 시기였어요. 공간 리모델링도 했고, 계약직 청년 활동가도 2명 있었고 장비도 새로 마련할 수 있었으니까요. 기본적인 인프라와 하드웨어가 갖춰진 시기라 중요했어요. 그리고 새싹기의 경험과 자원을 바탕으로 현재까지 동작FM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는 거 같아요. 방송 제작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지역사회에서 문화예술 프로그램, 역사탐방, 시민사회 및 풀뿌리 활동 등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어요. 이제 다시 한번 도약을 해야 하는데, 성장기가 길어진다는 생각도 들어요. 정체기가 아닐까, 고민됩니다.

 

조: 동작FM은 안정적이고 균형감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마을미디어 내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거 같고요. 무엇보다 조직체를 안정감 있게 운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른 곳보다 빠른 시간에 조직화가 되었다고 봐요. 운영위원이 초기부터 결성되었고 작년에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하기도 했고요. 어떻게 빠른 시간 내 조직화를 이루었는지, 비법이 있을까요?

 

양: 제가 살림을 맡고 있으니 동작FM을 이야기할 때 양승렬이라는 한 사람이 부각되는 측면이 있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아요. 전 운영위원 역할이 중요하고 크다고 봐요. 그들이 있었기에 조직형태와 체계를 갖출 수 있었어요. 운영위원이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니에요. 개국은 2013년 1월에 했는데, 운영위원은 2014년에 생겼어요. 8명 정도로 운영위원회가 구성되고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회의를 통해 중요한 일을 결정하고 역할분담을 한 거죠. 작년엔 규모에 맞는 사업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판단했어요. 우리가 단체로서 도약할 필요가 있을 거 같아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비영리 민간단체, 법인 등 단체 형태를 어떻게 할지 논의했어요. 거의 2년 가까이 고민했네요. 정답이 없는 문제니 우리 현 상황에 맞게 신중히 접근했어요. 조언을 많이 구해서 작년 가을 서울시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했어요. 이걸 시작으로 이후 방향을 정해보자고 결정했어요.

 

조: 월 1회 모이는 빈도도 높은 편이고, 실질적으로 결정이 내려지는 회의라는 것도 건강한 상황인 거 같아요. 운영위원회가 만들어진 계기나 배경이 있나요?

 

양: 전 초기에 조직에 대한 이해가 부재한 상태였어요. 그런데 참여자분들이 이 공간이 체계를 갖추고 커지기 위해선 의사결정 구조가 중요하고, 조직된 운영위원회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해주셨어요. 처음엔 제가 그 이야기를 잘 수용하지 못해서 1년이란 시간이 걸려서야 운영위가 꾸려졌어요. 지금 동작FM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계세요.

 

▲양승렬 국장

20대 초반 마을방송의 경험으로 시작

 

조: 동작FM을 시작하게 된 개인적인 동기도 궁금한데요.

 

양: 동작FM 이전에 마을방송국 활동을 했던 경험이 있어요. 원래 미디어를 만들고 싶었고, 특히 독립다큐멘터리 감독을 꿈꿨어요. 2004년, 제가 스물두살 때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장기 농성을 하던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라는 프로젝트에 감독으로 참여했는데, 사실 별 고민 없이 참여했어요. 그런데 그때 타인의 삶에 동화되는 경험을 한 거죠. 그곳에서 또래 청년들을 많이 만났어요. 특히 스물네살 네팔 청년을 인터뷰한 게 기억나는데, 나중에 카메라의 존재를 잊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녹화 후에도 자리를 떠나지 못했어요. 나중엔 카메라 내려놓고 데모하러 다녔어요.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카메라에 담는 행위가 나를 바꿀 수 있다는 걸 실감했어요.

 

두 번째로 2006년 대학교 3학년 봄, 농활을 간 경험이 생각나네요. 당시 평택 대추리를 방문했어요. 미군기지가 대추리로 이전하며 국방부가 토지를 수용하던 시기였어요. 남는 사람도 있고 떠나는 사람도 있었죠. 노인들이 맨몸으로 경찰과 싸우는 모습을 외면하지 못하겠더라고요. 그 현실이 너무 끔찍했어요.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카메라로 찍고 남기는 건 할 수 있으니 기록하는 작업을 시작했어요. ‘들소리 방송국’을 만들어 하루 10분 방송을 했고 총 200회 정도 방송을 했습니다. ‘참세상’이라는 인터넷 매체를 통해 스트리밍 되었는데, 여론을 만들고 외부의 관심을 일으키진 못했어요. 그러나 동네에서 고립되어 싸우고 있던 주민들과 뉴스를 보며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미디어가 우리를 하나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느낀 거죠. 마을방송국이라는 건 그 두 번의 경험으로 만들게 되었어요. 대학 졸업 후 앞으로 동작구에서 계속 살아갈 텐데 뭘 하면서 보낼까, 고민하던 차 마침 시기적으로 서울시에 마을미디어사업이 있었어요. 그 기회에 사람들과 마음을 모아서 마을방송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조: 피부로 느낀 경험이 정말 오래가는 거 같아요. 강력한 동인이 되어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거 같아요. 나와 이웃에게 미디어가 사회와 연결되는 고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느끼신 거네요. 결정적인 사건이라고 느껴지는데, 그게 양 국장님의 지속적으로 활동하게 되는 에너지원이 되지 않았을까요?

 

양: 분명 큰 계기였어요. 10년 전 일이지만 그때를 많이 떠올리게 되요. 시간과 공간, 사람이 다르지만 당시 느낀 희열과 희망을 계속 상기해요. 동작FM을 통해 또다시 실현되면 좋겠습니다.

 

조: 운영위원이 동작FM에서 정말 중요한 분들이라고 강조하셨는데, 같이 시작했던 멤버들의 동기는 무엇일까요?

 

양: 제가 20대 시절부터 시민단체와 진보정당 활동을 했었는데, 그때 함께했던 동료들이에요. 같은 동네 주민이고, 같은 가치를 지향하는 동료들이라 지역사회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자고 결의하는 데 이견이 없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2012년 당시 시장이 바뀌고 분위기가 달라졌잖아요. 마을 만들기, 주민 활동 지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어요. ‘마을미디어라는 걸 만들어보자. 관악FM처럼 동작도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누가 하겠어? 우리가 힘을 모아 직접 해보자!’고 결의했어요.

 

조: 애초에 미디어를 염두에 두고 시작했다는 점에서 특징이 분명하네요.

 

양: 맞아요. 그리고 옆 동네 관약FM의 사례도 중요하게 작용한 거 같아요.

 

▲성과모델만들기 프로젝트 팟캐스트 녹음

사람들과의 관계, 제일 어려워

 

조: 동작FM의 초창기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힘들었던 점은 뭘까요?

 

양: 초기엔 시설과 장비가 없었어요. 방송국이 어둡고 퀴퀴한 지하 창고 같았어요. 처음 온 분들이 무서워할 정도였어요. 인프라가 구축이 안 되어있으니 확장성이 제로에 가까웠고, 이 공간 자체를 설명하기도 어려웠어요. 그리고 초기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중요하고 잦은데, 그 갈등을 푸는 노하우가 부족했어요. 나이도 어렸고 경험도 부족했으니까요. 사람들과 관계 맺는 데 미숙해서 많이 삐거덕거리고 상처를 주고받은 기억이 납니다.

 

조: 갈등은 늘 존재하는 거 같아요. 그런 갈등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셨어요? 관계 문제는 지속되는 문제잖아요.

 

양: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동작FM을 매개로 사람을 만나면 이곳을 잘 설명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마을방송이 무엇인지, 동작FM은 당신에게 무얼 해줄 수 있고 당신은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를 잘 공유하고 활동을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당장 사람이 급하고 콘텐츠가 급해서 합류하면 삐걱거릴 확률이 높아요. 서로간의 거리를 좁히고 이해를 좁혀가는 게 필요해요. 그리고 운영자 입장에선 기대를 낮추고 욕심을 버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봐요. 처음에는 ‘내가 운영자인데, 이렇게 생고생하는데’라고 생각하며 지나치게 간섭 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떨쳐낼 수 있었어요. 동작FM에 참여하는 분들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었죠.

 

동작FM의 부흥요인? 타이밍, 그리고 역할분담!

 

▲왼쪽부터 양승렬, 신소연

조: 관계를 맺는 데 있어 양 국장님의 지혜가 느껴지네요. 여러가지 어려움을 비교적 빨리 해결하고 2014년 마을미디어 대상을 수상하셨어요. 그때가 부흥기라고 볼 수 있는데, 어떤 요인 때문에 빠르게 부흥기를 맞이할 수 있었나요?

 

양: 벌써 그렇게 되었네요. 그땐 동작FM에서 활동하는 게 신명 나고 자랑스럽던 시기에요. 연말에 대상을 받은 감격을 잊을 수 없어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지만 이전의 경험과 노력이 쌓여서 나온 결과가 아닐까요? 2013년 같은 경우는 교육을 두 번 열었고 참여자가 세 배 정도 늘었어요. 콘텐츠 수도 1.5배 늘었고. 멤버십과 콘텐츠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기에요. 저 혼자 상근 활동을 하던 시기인데, 외부 교육이나 수입보단 사람을 만나는 일에 집중했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지하 창고 같은 공간이 참여자분들께 어려운 공간으로 다가가는데 이 문제가 풀리지 않을 거 같아 고민이 가득했어요. 이걸 계속해야 하나, 스스로 질문을 참 많이 했어요. 딱 30대 중반까지만 해보자, 3년만, 아니 1년만 버텨보자 다짐했어요.

 

조: 2013년 2기 라디오 교육은 공모사업과 무관하게 직접 진행하셨잖아요.

 

양: 이 전 사업인 <우리마을미디어교실> 반응이 좋았고 입소문도 났어요. 참여자분들도 의욕이 많으셨고요. 이 흐름이 끊기면 안 될 거 같아서 한 번 더 만들어야겠다고 판단했어요. 공모사업을 기다리지 않고 맨땅에 헤딩하듯 직접 만들었어요. 배운 걸 총동원해 교육을 열었고, 같은 해 마을미디어 활성화 사업에 선정이 되어 다시 교육을 열었어요.

 

조: 중요한 특징이 느껴지네요. 초동모임도 미디어에 중점을 둔 팀이라는 점에서 특이점이 있고, 제일 처음 교육을 받은 분들의 열의가 식지 않게 이어질 수 있었던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공모사업이 없는 시기를 잘 이용하신 거 같아요. 보통 운영진들이 직장 다니며 주말과 밤 시간을 사용해서 활동하는데, 상근활동가가 딱 붙으면 확실히 다른 거 같아요. 후속 활동 지원을 못 하면 전멸되잖아요. 타이밍 잘 잡고 분위기 만들어가는 게 중요한 부분인 거 같아요.

 

양: 맞아요. 그리고 이 전 멤버들에겐 후배가 생긴 거잖아요. 후배와 더 나누려고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조: 이후에도 활동이 왕성했잖아요. 2014년 이후도 부흥기로 느껴져요.

▲동작FM 스튜디오

양: 2014년 안정적인 하드웨어가 구축된 걸 기반으로 지금까지 여러 활동을 실험할 수 있었어요. 2015년도 많은 시도를 했던 때였어요. 장비를 가지고 골목, 공원에 가서 작은 행사를 꾸렸어요. 방송제작을 도와주는 분도 생겨서, 저는 외부에서 미디어제작 교육도 하고 다른 단체와 연대할 수 있었어요. 서울마을미디어네트워크 간사로도 참여하며 동작FM의 주변부를 같이 만들어가는 역할을 할 수 있었어요.

 

조: 역할분담이 잘 되었네요. 청년활동가들이 <서울시 마을로청년활동가 지원사업>을 통해 결합하며 안정적인 운영에 한 몫 했을 거 같아요.

 

양: 동작FM은 청년 뉴딜활동가가 가장 먼저 배치된 곳이에요. 단기 계약직 활동가란 점에서 함께 활동하는 데 어려움도 있어요. 그렇지만 기본적인 인프라가 갖춰질 수 있고, 지역활동을 하며 청년을 만나기 어려우니 좋은 경험이기도 해요.

2부에 계속>>


>>> 동작FM 양승렬 방송국장 출연 방송 듣기

CBS 변상욱의 이야기쇼 ‘이 사람이 사는 법’ – 노량진2동 23통장 양승렬씨(2017.10.7.방송분)

http://podbbang.com/ch/11631?e=22411671

 


정리: 김푸른

사진: 박재경

녹음·편집: 신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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