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을미디어 리뷰단’은 마을미디어 콘텐츠의 지형을 들여다보고, 마을미디어를 소개하는 작업을 합니다.

 

차정미(성북동천)

 

(···) 세 살배기 윤이를 돌보고 나면 난희 할머니는 포상으로 다락방에서 콩강정, 갱엿, 약과 따위를 내왔다. 대부분 오래 보관해두어서 기름에 찌든 맛이 나는 것이었지만 달게 먹었다. 입안에서 녹는 강정의 질감, 그리고 혀에 오래 남았던 물엿의 단맛. 내가 다락방 쪽을 보자 난희 할머니는 다락문을 열면 안된다고 말했다. 쥐가 문다고.

난희 할머니가 없을 때 다락문을 몰래 열어 보았다. 그 안에 있던 물건이 의외로 시시해서 놀랐다. 제기와 비디오테이프, 선데이서울, 오래된 트랜지스터라디오 같은 잡동사니가 전부였다. 다락문을 열었을 때 어둑시근하고 서늘하게 피부에 와 닿던 공기의 질감을 기억한다. 오래된 색종이에서 나는 냄새같은.

다락은 금기의 영역이었다. 내가 함부로 보거나 만지면 안되는 물건들이 어둠을 망토처럼 두른 채 웅크려있었다. 다락문을 열면 광주리 속에 물건들이 빛을 받아 잠에서 깨는 것처럼 몽롱하게 빛났다. 문득 뒷통수에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뒤돌아봤을 땐 난희 할머니가 있었다. 나는 혼났고 그날 이후 난희 할머니네 놀러가지 못했다. 다락방의 어둠은 나의 내면에 웅크린 죄책감 같은 것이다. 죄책감은 나와 가장 많이 닮은 표정을 하고 있다.

– <젊은 시인의 다락방>을 위해 신미나 시인이 쓴 글 다락방’ –

 

2017년쯤 나는 성북마을미디어센터 홈페이지에서 우연히 <젊은 시인의 다락방>을 알게 되었다. 평소 시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이 방송이 참 반가웠다. 책을 한 권씩 읽어나가듯 생각 날 때마다 찾아서 듣곤 했다.

<젊은 시인의 다락방(이하 젊다락)>은 등단한 지 10년이 안된 젊은 시인과 함께 그의 시집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이 팟캐스트를 만든 보키니는 보이스 아트를 개척하며,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무대를 올리는 감성낭독팀이다. 성북마을미디어지원센터에서<똑솔라(똑똑! 솔깃한 라디오)>를 방송하고 있는데 여기 프로그램에 한 코너로 <젊다락>을 내보냈었다(2016년도 3월부터 2019년 2월까지 방송). 시집을 읽고 방송을 들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난 여전히 천천히 구독중이다. 본방 사수는 못했지만, 누군가의 관심 있는 내용을 담은 팟캐스트라면 언제라도 찾아서 들을 수 있으니 시의성에 큰 영향을 받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보키니 단체컷

 (맨오른쪽부터) 김주동,박윤경,부보미

 

* 팟캐스트 <젊은시인의 다락방> http://www.podbbang.com/ch/11379

 

저는 성북마을미디어센터 홈피에서 이 방송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요, 마을 방송에서 관심 있는 분야였던 를 만나다니 정말 반가웠어요. <젊다락>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주동(PD/보키니 대표, 이하 김) :

우선, 저희에겐 <젊다락>이 과거의 기억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현재처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는 점, 새로울 수 있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오네요. 이참에 이 프로그램을 계속 살려서 해야 하나? 살짝 고민도 들더라고요.(웃음)

처음에는 저와 김새봄(새봄출판사 대표)씨가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서로 말했는데 그러다가 문학팟캐스트까지 기획하게 되었죠. 새봄 씨 역시 시에 관심이 많았죠.(새봄 씨는 ‘라르고백작’이라는 닉네임으로 젊다락을 함께 2년간 진행했었다)

보키니 연습실 입구에 ‘목소리예술실험실’라고 써놓았는데요. 팟캐스트 제작과 함께 TV공익광고, 목소리 연기, 내레이션, 낭독공연 등을 하고 있어요.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좋은 훈련방법을 찾다가 시낭송을 하게 되었고 시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시낭송 대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준비하면서 시집을 많이 보게 되었죠. 시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하기도 했고 <젊다락>을 통해서 시인들을 만나다 보면 우리들이 하는 목소리 예술과 통하는 접점이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하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박윤경(젊다락 진행자, 이하 박) : 저는 10년 동안 시낭송을 꾸준히 연습해왔어요. 책으로만 접했던 시와 시인을 직접 만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저도 신기했어요. 처음에 김주동 선생님이 팟캐스트 제안을 했을 때 안 될 줄 알았어요. 유명한 시인을 어떻게 초대할까 걱정되었는데 선생님의 추진력 덕분에 시작할 수 있었죠.

 

저는 제가 읽었던 시집 위주로 시인들을 찾아보면서 <젊다락>을 들었는데요. 작년에 처음 찾아서 들었던 방송이 싱고, 라고 불렀다신미나 시인 편이었어요.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제겐 젊은 시인의 시는 어렵다라고 생각했었어요. 시를 제대로 읽지 않고 그런 생각을 먼저 했던 것 같아요. 그런 시점에 <젊다락>을 만나 더 반가웠어요.

: 베토벤과 같은 클래식 음악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그 음악을 느낄 수는 있잖아요. 피카소, 마티스의 그림 역시 난해하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좋아하잖아요. 그런 마음으로 시를 바라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이해하기보다 먼저 느끼고자 한다면 더 쉽게 다가올 거예요.

: 젊은 시인들의 시를 읽는데 사실 처음에는 어려웠어요. 왜 시를 이렇게 어렵게 쓰지? 불만도 있었는데. 신기하게 젊은 시인들의 시를 계속 읽다보니 시어 하나하나가 제 안에 들어오더라고요. 초대된 시인의 시집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안 읽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죠. 계속 읽다보니 흥미롭게 느껴지고 보이기 시작했죠.

어떤 장소냐에 따라서 시가 다르게 읽혀요. 어떤 시집은 출근길 지하철에서, 어떤 시집은 카페에서, 어떤 시집은 새벽에 잠이 안 올 때, 시가 완전 내 이야기처럼 다가올 때가 있어요.

 

신미나 시인이 쓴 방명록 엽서

신미나 시인이 쓴 방명록 엽서

 

부보미(젊다락 진행자, 이하 부) : <젊다락>은 제 마음속의 다락방 같은 존재였던 것 같아요(실제로 다락방을 경험해보진 못했지만). 제가 그리는 다락방 이미지와 같았어요. 다락방 안에 지난 물건들이 차곡차곡 쌓여있고 그 틈 속에서 뭔가를 찾고 발견하면서 ‘어 이것도 있었네’ 하면서 호기심이 커지듯이. 처음에는 부담이 됐었어요. 학교 다닐 때 시에 관한 문제가 나오면 정답을 맞혀야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시에 정답이 있는 것처럼 어떤 의미일까? 계속 맞추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들었는데 시에는 답이 없더라고요. 내가 느끼는 대로 내가 생각하는 대로 얘기하면 시인들은 그런 점을 좋아해주더라고요.

 

시집 한 권을 다 읽고, 시인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인데요. 방송 준비는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 <젊다락>은 대본이나 질문지가 따로 없어요. 난감해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나중에는 왜 없는지 알게 되고 모두들 그 시간을 즐겼어요. 시 이야기를 하면서 무의식 중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야기들을 기록하려고 했어요. 결국 삶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게 되니까요. 그런 점에서 <젊다락>은 유연하게 이루어지는 방송이었어요. 시인마다 제가 느낀 그 분의 개성을 살려서 오프닝을 준비했고, 배경음악 역시 그날 감성의 결에 따라 결정되곤 했답니다.

: 시인들은 언어를 통해서 자신의 길을 걸어가잖아요. 그 부분이 저희랑 잘 통했던 것 같아요. 저희도 낭독하면서 느끼는 고민이 있는데 어떤 고민하는 지점이 서로 일치할 때가 있는 거예요. 그런 부분이 나오면 계속 이야기가 핑퐁핑퐁 왔다갔다 자연스럽게 쏟아졌죠.

 

시인들이 써 놓고 간 방명록 엽서

 다락방에 다녀간 시인들이 엽서에 써준 방명록

 

김현, 박준, 유계영, 임솔아 등 유명한 젊은 시인들이 많이 다녀갔어요. 섭외 능력이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비법이 뭔가요?

: 시인들에게 한 권의 시집을 읽고 그 시집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는 이 프로그램 취지를 진정성 있게 전달했던 게 시인들에게 제일 와 닿았던 것 같아요.

처음 섭외할 때는 출판사에 일일이 연락처를 물어보고, 메일로 전화로 매번 연애편지 쓰듯 연락했어요. 출판사에서는 시인에게 연락이 잘 안 올 거라고 했죠. 회가 거듭될수록 시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으로 섭외가 밀리기도 하는 행복한 고민을 하기도 했습니다. 굳이 비법을 말하자면, 어쩌면 방송할 때의 진정성에 있었다고 봐요. 미리 시인의 시집을 충분히 읽고 느끼고 오는 패널의 태도와 함께요.

 

이수명 시인과 함께

▲이수명 시인과 함께

 

<젊다락>에서는 시인들이 무장해제 된다고 할까요?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요. 편안한 분위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더 진솔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 같아요. 여타 방송보다 시집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풍성하고요.

: 경기를 하기 전에 운동선수들이 몸을 풀 듯 방송 시작 전 30분 동안 초대 시인과 이야기를 나눕니다.(웃음) 이때가 가장 중요해요. 이 시인이 오늘 녹음실에서 이야기를 더 들려줄지 아닐지 파악하죠. 오늘 컨디션이 어떤 지 살펴보면서 초대된 시인의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노력했어요.

못 담은 이야기가 더 많았어요. 한 시인을 2회에 걸쳐 방송하는 것도 나중에 결정된 거예요. 녹음시작 전에 1시간~1시간 반 걸린다고 알려드리는데 하다보면 2시간이 훌쩍 넘어가요.

: 그 당시 제가 퇴근하고 저녁 7시쯤 넘어서 <젊다락> 녹음을 했어요. 녹음 분위기는 정말 다락방 같았어요. 주변 이곳저곳에는 책들이 쌓여있고, 조명도 어두웠고 신발 벗고 옹기종기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죠.

<젊다락>에 초대된 시인의 시집 마다 꼭 한 편씩 제 얘기 같은 시가 있더라고요. 각자 감동한 시들이 다 달랐어요. 시인에게 이런 점이 좋았다고 말했을 때 이건 어디서도 못 들었던 얘기다 하면서 그 시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들려주시기도 하고, 어떤 시는 제 안의 이야기를 끌어내기도 하고… 시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저희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계속 궁금한 점들을 질문하고 답하면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다른 방송에서 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주르르 흘러나왔던 건 저희 입장에선 보물 같은 순간이었죠.

: 녹음실에 들어가는 순간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았어요. 젊은 시인들은 내 이야기 해야지, 내 색깔을 보여줘야지 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모두 개성이 뚜렷해서 그들을 보는 게 재미있었고, 그러면서 시에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어떤 시는 그림으로 느껴졌고, 어떤 시는 영화처럼 다가오기도 했어요.

 

<젊다락>을 하면서 많은 시집들을 읽고 시인들을 만났는데요. 이 방송을 통해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 저는 이 방송이 없었다면 젊은 시인의 시를 못 만났을 것 같아요. 이 방송을 하면서 시를 더 좋아하게 됐고, 시를 통해서 삶의 고민을 나누면서 ‘지금’을 함께 살고 있구나 공감하는 게 더 커진 것 같아요.

: 윤동주의 시가 현재처럼 다가오기도 하고, 젊은 시인의 트렌디한 시에서 어렸을 때 감성이 느껴질 때도 있어요. 시가 정말 다양한 층위로 다가와요. 그 전에는 좋아하는 시만 봤는데 시를 보는 폭이 넓어졌다고 할까. 어떤 시를 읽어도 한 구절은 다가오더라고요. 내밀함이 더 깊어진 것 같아요.

 

<젊다락>은 어떻게 운영하셨어요? 혹시 지원사업을 받았나요?

: 지원받은 예산은 없었어요. 우리의 열정만으로 만들었죠. (웃음) 그 부분이 제일 미안해요. 시인들도 열정으로 하는 저희 모습을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3년 동안 열정으로 이어왔다니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지금 하고 있는 방송은 어떤 건가요?

: 현재 보키니는 옴니버스 낭독극 팟캐스트인 <똑똑! 솔깃한 라디오>를 하고 있어요. 올해는 소설 작품 위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고, 여기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보키니 멤버들 각자 개성에 맞는 방송도 펼쳐갈 예정입니다.

 

 

<젋다락>은 팟빵에서 다시듣기로 만날 수 있다. 아는 시인의 이름을 먼저 찾아서 들어도 좋고, 시인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시를 찾아 들어도 좋다. 시 쓰는 방식을 엿볼 수도 있고, 지인이 놀러와서 했던 말이 시로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알게 될 수도 있다. 시인마다 코너들이 조금씩 달라서 마치 매번 특별부록이 있는 느낌이다.

애청자로서 이 방송이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보키니 김주동 대표는 만일 <젊다락>을 다시 하게 된다면 최소한의 출연료는 줄 수 있는 환경에서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싶다고. 무엇보다 열악한 제작환경 속에서도 3년간 <젊다락>을 지켜낸 보키니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감사합니다” 마을미디어에서 보키니의 활약이 앞으로 더 기대된다.

 


[필자소개] 차정미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를 만들고 있으며 올해 편집장을 맡았다. 옆 동네 정릉 마을잡지 <정릉야책> 디자인도 하고 있다. 2017년부터 마을미디어 활동을 시작해 차곡차곡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