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스스로 이야기하다 : 난민 혐오 전에 당신이 알아야 할 것 ② – 이주민방송 인터뷰

By | 2018-11-11T20:14:44+00:00 11월 11th, 2018|카테고리: 4_주목!이콘텐츠, 블로그|Tags: , , , , |0 Comments

 

권세미(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 ‘마을미디어 리뷰단’은 마을미디어 콘텐츠의 지형을 들여다보고, 마을미디어를 소개하는 작업을 합니다.

 

1편에서는 <덤벌의 TMI>가 소개되었습니다.>>

난민 혐오 전에 당신이 알아야 할 것 ① : 덤벌의 TMI

http://maeulmedia.org/archives/15970

 

 1편에서는 이주민 스스로 만드는 방송, <덤벌의 TMI>를 소개해드렸습니다. 이주민과 선주민이 알아야 할 정보들을 담은 영상 콘텐츠지요. 2편에서는 이 방송을 만들어가는 덤벌과 이주민방송 활동가 인터뷰를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우리가 모르고 지나쳤던 이들의 사정, 같이 들으러 가실까요?

▲ <덤벌의 TMI> 1회 최저임금이 올랐다, 야호! 화면캡처

문래동의 한 스튜디오에 들어서니 이주민방송 한지희 PD가 카메라를 세팅하며 촬영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예쁜 네팔모자를 쓴 덤벌 수바와 네팔 커뮤니티에 촬영현장을 생중계할 스마트폰을 세팅하고 대본연습을 하고 있었어요. 이주민방송의 정혜실 대표는 대본을 작성하시고, 어떤 얘기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조언을 하는 역할이었어요.

이날 <덤벌의 TMI> 4편이 촬영 중이었는데, 이주민의 휴가를 주제로 의정부 이주민 상담센터인 엑소더스의 이주민 활동가 윤영아 게스트와 함께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이주민의 휴가가 주제였는데, 휴가를 요구하기 어려운 이주민의 안타까운 상황이 소개되었습니다.

근로기준법 63조, 고용허가제 등 이주민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이슈이지만 우리는 잘 모르는 용어들이 지나갔습니다. 저의 무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어요. 에어컨이 있음에도 약간 더웠던 스튜디오에서 유쾌하게 촬영이 진행되었어요.

▲ 촬영 준비가 한창인 스튜디오

얼마 전 담배밭에서 일하다가 돌아가신 이주민 노동자에 관한 뉴스를 보신 적 있나요? 무더운 담배 밭에서 일하던 이주민 노동자가 기절한 후 깨어나자 1시간 만에 다시 일하러 갔다가 사망한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다들 휴가를 떠나는 여름이지만 쉬고 싶다고 하면 고용을 유지하지 못할까 봐 쉬지 못하고 계속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많고, 그러다가 이런 사고가 일어난 것이죠. 이주민에게 휴가의 권리가 있는지, 어떻게 하면 휴가를 요구할 수 있는지 등 유용한 정보를 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제주 난민 문제를 지켜보면서 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이주민, 덤벌 수바를 직접 만나서 방송과 현 상황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과연 SNS에서 공유하기를 누르고 싶게 만드는 세련된 영상의 주인공은 어떤 분일까 궁금하기도 했고요.

촬영이 끝나고 진행자 덤벌 수바, 이주민방송 정혜실 대표, 게스트로 나와주신 윤영아 활동가, 한지희 PD와 프로그램과 난민혐오에 관한 인터뷰(를 빙자한 수다)를 나눠보았습니다.

▲왼쪽부터 덤벌 수바 진행자, 게스트로 출연한 윤영아 활동가

 

이주민 기자단, 이주민 이슈 취재하러 갔더니, ‘너는 누구냐’

권세미(이하 권) : 소개 부탁드립니다.

정혜실 대표(이하 정) : 이주민방송 정혜실 공동대표입니다. 덤벌 선생님은 이주민 방송의 산 역사이신데요, 어떤 활동을 해오셨는지 소개 부탁드려요.

덤벌 수바(이하 덤): 2005년 MWTV ‘이주노동자 세상’의 사회자를 맡아 진행했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방송을 계속해왔어요. 그때는 ‘이주노동자 세상’이 화려했어요. 방송 날은 사회자한테 분장 스탭이 따로 분장도 해주고, 패널도 3~4명 정도 있었어요. 시작을 화려하게 했죠. 그러다 정권 바뀌면서 지원이 끊겨 전부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섰습니다.

정: 초창기 MWTV 자체 자원이 많았다기보다 활동가, TBS 시민방송 스튜디오를 이용할 수 있어서 규모 있게 방송을 제작할 수 있었어요. 당시는 이주민이 직접 목소리를 내는 매체가 없었기 때문에 방송에 참여하는 사람도 많았고요.

예전 영상을 보면 덤벌님이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누비셨죠.

덤: 처음엔 이주민 기자단이 없었어요. 예전에 수원 출입국 6층에서 이주여성이 뛰어내려서 자살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바로 일주일 후에 이 문제를 취재하러 갔는데 출입국에서 누구냐고 묻더라고요. 네팔 기자라고 하니까, 발끝부터 머리까지 훑으며 짐승처럼 쳐다봤던 게 아직도 생생해요. 기자인 우리가 질문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우리에게 질문하는 상황이 황당했죠. 그때부터 쭉 지금까지 해왔어요.

정 : 서울마을미디어 사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미디액트에서 지원을 받아 라디오를 하고 계시죠?

덤 : 라디오는 ‘네팔코리아’라는 네팔 방송을 하고 있어요. 이주민들이 자기 목소리 내는 게 제도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한국에 네팔인이 4만 명이 와있는데 90%가 고용허가제를 통해서 왔어요. 그렇게 온 사람들은 처음 신고한 것과 다른 일을 하게 되면 불법이에요. 그것 때문에 협박 같은 게 오기도 해요. 출입국에서 ‘집에 가고 싶냐 ‘ 협박한다고요.

기자 하려면 재정적으로 자기 주머니에서 돈을 써야 하는 거라서… 돈 벌러 오는 건데… 이주민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어요. 활발하게 활동하기엔.

정: 라디오가 지원금으로 하는 거라서 유류비 지급도 안 되고 취재비도 지급 안 되다 보니… 그런 어려움이 있어요. 죄송한 마음이죠.

 

방송 보고 산재 신청 방법 알게 돼

정: 방송이름이 <덤벌의 TMI>인데 이름은 맘에 드시는지?

덤: 내 이름을 건다는 게 처음에는 부담됐는데 점점 익숙해지고 있어요. 이제 편집까지 직접 해보려고 해요.

정 : 네팔분들 반응은 어떤가요?

덤 : 반응이 좋아요. 한국말로 진행하다 보니 어떤 분이 이 프로를 통해서 한국말을 배우기도 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덤벌의 TMI> 3회에 산재에 관해 얘기를 했어요. 이주민이 한국에서 산재를 당할 때 뭘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정보를 소개했어요. 대부분 사업주가 산업재해가 발생해도 산재 인정을 안 해주려고 해요. 그러다 보니 피해를 받은 이주민 대부분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포기하는데, 방송을 보고 방법을 알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뿌듯했어요.

정 : 참고로 사업주를 통하지 않아도 산재를 신청할 수 있어요. 방송 당시에 이주노동계의 대모 석원정 선생님을 모시고 설명을 들어서 정확한 정보가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덤 : 산재를 이렇게 신청할 수 있구나 하는 걸 알고 관심 있게 봤다는 분도 있었어요.

정 : 방송 주제를 정할 때 덤벌 선생님께서 주제 제안을 많이 하세요. 산재를 주제로 정한 것도 덤벌 선생님이세요. 그리고 노동 현장에서 겪은 문제를 말씀해주시면, 그 얘기를 듣고 거기에 필요한 주제를 같이 정하기도 해요. 대부분 덤벌 선생님이 제안한 주제를 방송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덤 : 저는 주제만 던지는 거고, 대본 쓰고 구성하는 건 대표님이 많이 도와주세요.

정 : 덤벌 선생님이 전화 인터뷰도 연결해주시고 다른 단체들 활동 영상도 받아주세요. 월급 받고 활동하는 기자가 있는 게 아니다 보니까 찾아가서 인터뷰하기보다는 전화나 보내주는 영상을 많이 활용하는 편입니다.

권 : 어떤 과정을 통해 이 방송을 하게 됐나요?

정: 시민방송에서 방송 지원을 하고, 영상 전공자인 한지희 PD가 들어오면서 영상콘텐츠를 하게 됐어요. 총 4꼭지를 하는데 이 중에 이주민 당사자가 진행하는 건 <덤벌의 TMI> 하나에요. 그동안 재정이 어려워서 자체 제작을 못 했는데, 다행스럽게 올해는 재원을 마련해서 진행하게 됐어요.

덤 : 프로그램 진행하면서 점점 재밌어지고, 자신감 있게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어서 좋은 거 같아요. 많은 분이 찾아주시고 프로그램을 도와주고 계세요.

윤영아(이하 윤) : 활동하시는 거 대단하신 거 같아요. 오늘 방송 함께 해서 좋았어요. 다른 곳에서 들을 수 없는 이야기도 해주셔서요. 우리나라 이주민을 위한 방송 같은 게 없어요. 페북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소식들은 정신 없게 만드는 소식 많은데 제대로 된 내용은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이런 방송을 할 수 있는 게 좋았어요.

▲이주민방송 정혜실 대표

이주민방송, 난민 혐오 문제에 목소리를 내다.

정 : 저는 2008년도에 선생님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한 게 인연이 되어서 활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작년까지는 덤벌 선생님과 이주민방송 공동대표를 지냈고, 올해는 야마다 선생님과 함께하고 있어요. 저는 촬영이나 PD는 아니지만 글은 쓸 수 있어서 대본을 쓰는 일을 많이 해왔어요.

얼마 전 제주 예맨 난민 문제에 대해 이주민 방송에서 목소리를 내고 싶어서 칼럼을 쓰기도 했어요. 이게 엄청나게 화제가 되었는데, 악플 달러 왔다가 댓글 기능이 없어서 조회만 하고 간 사람들도 많아요.(웃음) 사회적 이슈에 제 때 목소리를 냈더니 거기에 대한 반응이 보이더라구요. 며칠 간 천 건정도. 이게 알려지다보니 이전 이주민방송 영상까지 유투브를 통해 악플을 달러오기도 했어요.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고 웃프지만 이주민 방송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죠.

한국인의 정서가 이렇게 피폐해졌는지.. 너무 가슴아파요. 20년 동안 운동을 했는데도 바뀐 게 없다는 게 안타깝지만,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언론과 목소리가 더욱 필요하다는 필요성을 확인하기도 했어요. 이주민방송이 거대 방송사 같은 재원이나 자원을 갖고 있진 않지만, 우리는 눈치보지 않고 인권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미디어 운동단체로서의 활동을 하는 것 같아서 자부심도 느껴요.

▲왼쪽부터 덤벌 수바(진행자), 윤영아(엑소더스 활동가), 정혜실(이주민방송 대표)

 

이주민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

권 : <덤벌의 TMI>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말씀해주신다면요?

덤 : 처음으로 이주민 방송에 온 게…우리 이주민이 자기 아픔과 고통을 스스로 얘기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대신 얘기해줄 수는 있겠지만 그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이주민이 자기의 아픔을 스스로 얘기해야한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이 듣기에는 안 좋게 들릴 수도 있지만, 1992년에 한국에 처음 왔는데 2000년대 까지는 이주민을 도와주는 단체가 없었거든요. 고용허가제가 2006년도에 실시된 후에 전국에 400개 이주민 지원단체가 생겼어요. 지역, 동네마다 지원단체가 있어요. 그 분들이 있어서 이주민에 대한 관리가 되고 차별이 해소된 면도 있겠지만, 누군가 대신 얘기를 해주다보니 이주민들이 자기 얘기를 하려는 생각이 적어지지 않았나. 활동이 답보된 거 같은 느낌도 들어요.

누군가 자기 얘기를 해달라고 하면, 나는 스스로 말하라고 해요. 도와주기는 하지만 당사자가 직접 얘기하고 싸우도록 해요. 그 순간에는 자기도 섭섭할 수 있고, 왜 안 도와주냐, 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이 배우지 못하거든요. 길을 알려주면 그 분이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 : 요즘 제주 예민 난민 문제로 말이 많잖아요. 한국의 난민 혐오 여론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덤 : 톰행크스 나오는 터미널이라는 영화, 공항에서 억류되는 영화를 본 적 있는데 그 영화에서는 톰 행크스나 여러 사람들이 얘기하는 걸 보여주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감옥 같은 곳에서 갇혀 있어요. 한국은 경제적으로 세계14위라고 하는데, 그런 인권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난민이나 이주민에 대한 인식과 대우를 보면 시대에 뒤쳐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주민에 대한 인권 의식은 답보상태

정: 92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에서 이주민 인권이 좋아졌다고 보시나요?

덤: 중간에 조금 한국에 없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더 나빠진 것 같아요. 그 때는 이주민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더 잘해줬어요. 그런데 고용허가제가 실시된 이후 산업연수생이 들어오면서 이주민에 대한 차별이 점점 심해졌어요. 시골같은 곳에서 택시를 타면 ‘돈 얼마나 많이 벌었어?’ 반말로 물어봐요. 몇 번 막 싸운 적이 있었어요. 아주 기분 나쁘게 왜 반말하나? 그러면서. 보수적이어서 받아들이기가 힘든 건지 아니면 몰라서 그런건지 헷갈릴 때가 많아요.

권 : 윤영아 선생님은 만약 캄보디아 방송을 만약하게 된다면 어떤 방송 하고 싶으세요?

덤 : 사실 이주민 중에 네팔보다 캄보디아 분들 많아요.

윤 : 네, 캄보디아 인이 많은데 제대로 된 정보를 받은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정보 부족 때문에 뭐가 잘못된 건지도 제대로 알기 힘들어요. 저희도 고용허가제 하기 전인 2003년도에 한국에 왔었는데, 그 때는 그렇게 힘든 게 없었어요. 언어를 열심히 배우면서 기본 대화만 할 수 있으면 생활하기에 참 좋았던 시기였어요. 그 때도 노동센터가 있지 않았구요. 그 후에 노동센터도 생기고 다문화센터 등 여러 혜택을 주는 센터가 늘어났지만 문제도 많이 일어났어요. 어떤 걸 바꾸고 싶은가 묻는다면 너무 많아서 한 가지를 뽑기 어렵네요.

▲왼쪽 위부터 오른쪽 아래로, 덤벌 수바(진행자), 한지희(이주민방송 PD), 윤영아(엑소더스 활동가), 정혜실(이주민방송 대표)

 

자국민의 보호보다 한국의 눈치를 보는 각국들

한: 캄보디아 커뮤니티 안에서 네팔코리아 같은 게 없나요?

윤 : 커뮤니티 안에서 얘기가 되긴 하는데, 정치적인 문제를 우리나라 커뮤니티에서 얘기하기가 어려워요.

정 : 각국 정부는 노동자를 내보내서 외화벌이를 하게 되면 좋잖아요. 그러다보니까 양국 협정을 맺을 때 한국 정부의 요구를 수용하는 쪽으로 협정을 맺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노조를 안 해야 한다거나 한국 사람과 결혼하지 말 것 등의 약속을 하도록 강요하기도 해요.

그리고 대사관도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여권 발급할 때 몇 십 만원을 받아요. 아이를 보내야 하면 백~이백만원 돈을 보내야하구요. 그러다보니 이주민들이 대사관을 신뢰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필리핀이나 네팔 대사관은 이런 인권 운동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현재는 정부가 약자 입장이 되서 불공평한 거를 수용하고, 한국정부 말을 잘 들으라고 요구하기도 하죠.

덤 : 네팔 대사가 임명장을 제출하는데, 네팔 대사가 처음 하는 말이 ‘네팔 국민이 한국에서 많이 일하게 해주십시요’ 였어요. 이게 네팔 신문 기사로도 나왔어요. 이걸 보고 제가 막 욕했던 적이 있어요. 네팔 노동자의 권리를 찾게 해달라 얘기해야 하는데, 더 많이 일하게 해달라니.. 항의를 하고 기사를 쓰니까 대사가 국익을 위해서 그런 말을 한 거지 네팔인의 어려움을 얘기 안하겠냐 하면서 기사 내용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기도 했어요.

정 : 이주민은 자국과 한국 양쪽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중고에 갇혀 있어요.

 

‘우리는 모두 이주민이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근로자에게 고용조건에 있어 국내근로자와 동등한 대우를 보장해 주는 제도라고 두산백과’는 기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04년부터 시행된 이 제도가 오히려 이주민 노동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이주민 활동가들은 얘기합니다. 근로기준법 63조는 근로시간·휴식·휴일 보호 못 받는 ‘예외 근로자’ 규정하는 조항으로 노동자의 권리 침해에 악용되고 있는 법입니다. 이 법에 의하면 ‘농어촌 지역 노동자들과 감시직 노동자들은 고용주가 한달 내내 휴일을 주지 않거나, 하루 16시간 이상 근무를 시켜도 항의’할 수 없습니다.

덤벌의 TMI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건, 누구나 누려야하는 노동과 휴식의 권리에서 이주민도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이야기입니다. 이주민 노동자가 한국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역할하고 있는 반면 그들의 권리에 대한 고민은 이제 시작 단계인 것 같습니다. 이주민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이주민 방송과 <덤벌의 TMI>가 반가운 이유입니다.□

 

[덤벌의TMI] 1회 최저임금이 올랐다! 야호?!(링크)   

[덤벌의TMI] 3회 이주노동자 산업재해

https://youtu.be/TzDl_B0Q7qM (유투브 링크)

[덤벌의TMI] 4회 이주노동자 휴가(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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