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공단을 아시나요? : (보이는) 라디오 <구로공단을 기억해> -금천문화역사포럼 X 라디오금천

김진숙(라디오금천 PD)

 

** ‘마을미디어 리뷰단’은 마을미디어 콘텐츠의 지형을 들여다보고, 마을미디어를 소개하는 작업을 합니다.

 

1964년 한국수출산업공단이라는 정식명칭을 단 구로공단이 구로와 금천구 일대에 조성되었다. 구로공단은 1978년에는 일하는 노동자만 무려 11만4천여명에 달하는 거대 산업단지로 발전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여자들이 서울에 올라와 열심히 일하며 번 돈을 집에 보내주는 장한 딸이자 수출 역군이 된다는 극적인 스토리는 구로공단이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운 일등공신이라는 이미지에 딱 맞아떨어지는 홍보 만점 아이템으로 이용되었다.

▲ 구로공단노동자생활체험관에서 당시 상점을 복원 해놓은 가리봉상회. 여기서 1편 녹음이 진행되었다.

 

성공 신화 속 구로공단 여공들의 삶

성공 신화 속에 있었던 구로공단 여공들의 삶은 어땠을까?

1977년 구로공단에서 일하는 여공들의 50% 이상은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했고 그중 70%는 농촌 출신으로, 가난한 집에서 못 배우며 살다가 성공을 꿈꾸며 서울에 올라온 여공들의 삶은 당시 정부가 선전하는 성공신화와는 무관하게 언제나 비참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구로공단 여공들은 대개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하곤 했는데, 작업장은 봉제공장 특유의 먼지와 소음으로 뒤덮여 있어 항상 기침과 감기가 끊이지 않았고, 특히 일부 업주들은 밤샘 작업을 시키면서 행여 이들이 졸아서 일하지 않을까 봐 피로회복제라면서 각성제를 먹이기도 했다고 한다.

일을 많이 하는 대신에 돈이라도 많이 벌면 그나마 좋았겠지만, 이들의 수입은 많이 알려진 대로 주로 집에 송금도 하고 자매, 형제들 뒷바라지에 보태 정작 본인들은 학교에 다니지 못하거나 교통비와 식비를 아껴가며 야간학교에 다녔다.

이렇듯 구로공단은 한국을 일으킨 성공신화로 많이 알려졌고 당시 언론에서는 노동자들을 산업역군으로 묘사했지만 한편으로는 과도한 업무, 노동인권침해, 구로동맹파업 등으로 다르게 기억되기도 한다.

 

구로공단의 생생한 역사를 담은 보이는 라디오 ‘구로공단을 기억해’

<프로그램>

1부. 쪽방 주인과 노동자의 만남

2부. 구로공단 노동자에게 듣는 구로공단의 역사(녹음)

3부. 구로공단의 노동열사 이야기(녹음)

진행 윤명숙(라디오금천), 기술 김진숙(라디오금천), 주최 금천문화역사포럼

** 총 5부 제작 예정

금천문화역사포럼과 라디오금천이 함께 하는 보이는 라디오 ‘구로공단을 기억해’는 당시 직접 구로공단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 생생하게 전해주는 구로공단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구로공단노동자생활체험관 가리봉상회에서 1편이 녹음 중이다. 왼쪽부터 당시 노동자 세입자 강명자님, 당시 집주인 윤명숙님, 진행자 윤명숙님(라디오금천)

[1편]에는 쪽방에서 세 들어 살았던 노동자와 집주인의 만남으로 당시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다뤘다.

1960~80년대 구로공단 여공들이 살았던 집은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으면서 미로처럼 되어 있었기 때문에 ‘벌집’,‘쪽방’이라고 불렸다.

구로공단에 여공이 대거 몰리자 구로공단 일대는 방이 없어 여공들은 2평도 안 되는 방을 4~5명이 함께 사용하기도 했는데, 현관문을 들어서면 1평도 안 되는 부엌, 빨래터 겸 세면장이 있었고, 1평 정도의 방에 비키니 옷장을 놓으면 4~5명의 여공은 좁은 곳에서 칼잠을 자야 했다.

쪽방은 보통 2층짜리 단독주택 하나에 20여 개의 방을 만들었는데, 수십 명이 살아도 화장실은 겨우 1개였고, 무허가로 난립해 집을 개조하다 보니 연탄가스 위험이 항상 있었다.

‘구로공단을 기억해’ 1편에서는 이 쪽방촌에서 생활했던 노동자 세입자와 쪽방 집주인이 출연한다. 여러 명이 함께 울고 웃으며 실제로 생활했던 노동자 세입자의 이야기와 쪽방 집주인으로서 느낀 점들을 들을 수 있다. 방송에서는 미처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당시 상황을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담백하게 담아냈다.

강명자 : 예전에도 미싱사였지만 지금도 독산동에서 미싱하고 있거든요. 40년을 봉제일을 하는. 40년을 하면 다른 직업은 박사가 되던데 저는 그냥 미싱사라고 하기가 억울해서(웃음). 미싱박사 강명자입니다.

윤명숙 : 부엌이 없는 방을 쪽방이라고 했는데, 우린 쪽방은 아니고 방 여남은 개 세 놓고 살았던 윤명숙입니다.

강명자 : 쪽방이 아니면 벌집인가? 닭장집인가?

윤명자 : 벌집도 아니야. 벌집은 이 층까지 있어야 벌집이지

강명자 : 아니면 닭장집?

윤명자 : 글쎄…

[2편]은 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처음 구로공단에서의 생활을 이야기했다.

70년대와 80년대 그리고 90년대 2000년대 노동자들의 당시의 근무환경, 첫 월급 받았을 때, 당시 즐길 거리 등등 세대별로 각각 이야기를 나누면서, 임금의 금액만 차이만 있을 뿐 최저임금 받기는 마찬가지인 제조 현장의 현실과 지금은 구로공단에서 디지털 산업단지로 겉모습만 화려하게 바뀌었을 뿐 그 안의 노동자들의 팍팍한 삶은 계속되고 있다는 안타까운 얘기까지. 심각하지않게 가볍게 접근하며 당시의 상황들을 잘 전달했던 편이다.

▲ 2편 방송을 녹음 중인 라디오금천 스튜디오. 시대별 구로공단 노동자로 70년대 조분순 님, 80년대 강명자 님, 90년대 김진숙 님이 출연했다.

[3편]은 열사추모제 이야기다.

그중 많이 알려진 열사 중에서 동대문 평화시장 앞에서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를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구로공단에도 돈과 권력, 폭압에 맞서 싸우다 살해된 열사분들이 계시고, 열 분의 열사와 동지를 추모하기 위해 해마다 10월 구로공단에서 열사문화제를 가진다. 3편에서는 서울남부열사문화제 추모위원회 두 분이 게스트로 참여해 열사분들의 이야기와 문화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4편]은 구로공단하면 빼놓을 수 없는 노동운동 이야기가 이어진다.

한국 노동운동 역사에는 구로동맹파업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당시 구로동맹파업에 참여한 노동자의 당시 현장을 영화 1987보다 더 생생하고 스릴있게 들으실 수 있다. 구로노동운동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얼마만큼 변화가 되었는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싸웠는지, 그리고 그 후의 구로공단의 노동 운동에 대한 얘기도 나눌 예정이다.

마지막 [5편]은 구로공단이었던 금천구에 노동자 복지센터 건립을 위해 노력했던 각 관련 인사들과의 집담회가 예정되어 있다.

▲ 왼쪽부터 3편에 출연한 황휘준 님(민주노총 남부지구협의회 사무차장), 진행자 윤명숙님 (라디오금천), 이기문 님(박영진, 김종수열사 추모사업회 간사)

지금의 ‘구로공단’은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이름이 바뀌어서 2,3단지였던 금천 지역은 가산디지털단지, 1단지였던 구로지역은 구로디지털단지가 되었다. 구로공단이라는 이름은 점점 사람들의 기억 속에 멀어지고 여전히 디지털 단지 내에는 1만여 개 업체, 14만여 명이 일하는 대한민국 IT 산업밸리로 각광받고 있지만 지금도 노동자들의 삶은 구로공단 시절과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건 아닐까.□

 


<구로공단을 기억해> 들으러가기

1부. 쪽방 주인과 노동자의 만남(보이는 라디오)

– 페이스북 보이는 라디오

https://www.facebook.com/ragcfm01/videos/546680252428808/

– 팟캐스트

http://www.podbbang.com/ch/9863?e=22705398

2부. 구로공단 노동자에게 듣는 구로공단의 역사(팟캐스트)

http://www.podbbang.com/ch/9863?e=22720343

3부. 구로공단의 노동열사 이야기(팟캐스트)

http://www.podbbang.com/ch/9863?e=2273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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