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팀이 열일한 마을라디오 공개방송! – 2018 “마을라디오@한강” 후기

By | 2018-08-30T20:01:03+00:00 8월 29th, 2018|카테고리: 01_이슈, 2_기획, 블로그|Tags: , , |0 Comments

김가희 (호박이넝쿨덩쿨)

 

>> 마을라디오@한강 공개방송

 

감수성 풍부한 10대 때 가장 좋은 친구였던 라디오. 그래서인지 라디오라는 말은 겨울밤 아랫목에서 배 깔고 누워 듣던 그 따듯함과 편안함을 연상시킨다. 111년만의 폭염 아래 따뜻함이 그립다는 말을 하다니 나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지만 라디오라는 말에는 확실히 정겨운 이미지가 있다. 온 국민이 좋아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택이의 대국 결과를 기다리며 쌍문동 4인방이 나란히 배 깔고 누워서 귀 기울인 라디오가 생각난다. 당시 최고 라디오 디제이 이문세 아저씨야말로 응팔의 또 하나의 주인공이었다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 시절에 빼놓을 수 없는 게 라디오다.

라디오가 친구였던 시절을 보낸 추억 때문인지 라디오가 주는 묘한 매력 때문인지 마을미디어 매체 중에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다양하고 우수한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이 바로 라디오다.

 

배 깔고 누워서 귀 기울이던 라디오, 한강에서 다시 만나다

라디오 예찬을 이렇게 늘어놓은 까닭은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마을라디오방송을 한꺼번에 들으며 눈으로도 즐기는 축제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솔직히 바쁘다는 핑계 반, 접근성이 좋지 않다는 핑계 반으로 우리 동네 라디오방송조차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어떻게 방송을 하는지 궁금즘을 해소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컸다.

 

마을라디오가 한 자리에 모인 이번 축제는 바로 한강 몽땅 축제 프로그램의 하나로 참여한 ‘2018 서울마을라디오 공개방송 <마을라디오 @한강>’ 이었다. 마을라디오 연합 공개방송은 올해가 벌써 4번째였고 올 공개방송은 지난 8월 10일과 11일 이틀간 오후 5시에 시작해서 9시까지 총 10팀의 마을라디오 팀이 나와 릴레이 공개방송을 펼쳤다. 장소는 한강 마포대교 아래 공터로, 다리 밑 공개방송이었다. 강가에서 가장 시원한 곳이 다리 밑이란 사실은 어린 시절 고향 마을에서 어른들 따라 갔던 천렵 장소가 바로 동네 개천 다리 밑이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지만 마포대교 같이 큰 다리 밑도 시원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올 여름 같은 폭염에 시원한 곳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겠지만 그나마 다리 밑 그늘이라 다행은 다행이었다,

한강의 존재를 의식할 때는 차를 타고 한강 변을 달릴 때 정도였는데 마을라디오 공개방송 덕분에 직접 한강 다리 밑에 앉아 오랜 시간을 있어보니 한강에 얽힌 추억 하나, 사연 하나 없는 사람들이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한강이 새로운 장소로 경험되었다. 한강 몽땅 축제에서 진행되는 공개방송이어서인지 많은 마을라디오 팀들이 한강에 관한 이야기들을 준비해왔다.

 

1010색 이야기, 실시간 생중계에 사연과 신청곡으로 참여 가능

더불어 라디오하면 청취자들의 사연 소개와 신청곡이 빠질 수 없듯이 현장에서 그리고 페이스북 댓글로 사연과 신청을 받아 소개하였고 이렇게 진행되는 공개방송은 실시간 생중계도 되었다. 현장에 참여는 못하지만 마음만 있다면 마을라디오 공개방송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한강에 대한 정보를 재밌는 퀴즈와 함께 잘 알려준 팀은 11일에 방송한 동작FM의 <엄마는 방송중> 팀이었다. 동작구에 살고 있는 동작맘 모여라 커뮤니티를 통해 라디오 동작맘으로 활동 중인 이 팀은 4년간 120회 방송을 했으며 엄마들이 꾸미는 고품격 수다를 표방한다. 최근 한국 사회의 뜨거운 이슈 ‘워라밸’이라는 주제를 가져왔지만 주제 이야기보다 퀴즈를 통해 알게 된 한강 관련 정보를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난지, 뚝섬. 동대문구, 어린이회관 등 한강의 수영장만 무려 9개가 된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평일 수영장 요금은 얼마일까요? 아무래도 아이들이 있으면 수영장과 친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TV 장면으로만 본 한강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는 생각에 모든 시름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한강과 관련한 추억 이야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첫 방송이었던 와보숑FM의 <지금이 소중해> 팀의 이야기였다. 팀의 최고 연장자가 72세인 시니어 팀의 인생이야기는 그들이 살아낸 세대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본인의 40대를 격동의 시기였다고 표현한 한 멤버는 그 시련과 격동의 시기에 피신처와 힐링의 장소가 되었던 곳이 바로 한강이었다고 한다. 맞벌이하며 가족을 돌보느라 자신을 돌볼 틈이 없던 40대에 한강에 나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를 하며 놓치고 산 세월을 아쉬워만 하지 말고 지금부터 나를 위해 살자 다짐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나를 잊고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을 떠올렸다. 지금이 소중하다고 외치면서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우리 언니들의 에너지를 느낀 시간이었다.

 

<엄마는 방송중>과 <지금이 소중해>가 토크 중심의 방송이라면 드라마 형식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팀들도 있다. 강북FM의 라디오극장 시즌3 – <엄마! 한강에서 외치다>는 마치 <지금이 소중해> 팀의 소재를 가져다가 드라마를 만든 것 같이 주제가 통하는 재미도 주었다. 시즌 3까지 오면서 어려운 점도 많았을 것이다. 특히 작가가 없어 출연진들이 대본까지 쓰던 시절도 있었다고 하는데 다행히 지금은 좋은 작가를 만난 것 같다. 드라마이다 보니 출연진도 무려 6명이나 된다. 드라마 오프닝 음악이 마치 대하드라마를 듣는 것 같이 웅장히 퍼진 후 나온 이야기는 결혼 후 집안 살림과 육아에 전념하다가 다시 사회로 나온 경단녀 세희가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이 시대 대부분의 여성들이 공감하는 문제를 한강 데이트롤 하다 일찍 결혼했다는 설정과 함께 재밌게 구성을 잘 했다. 지금까지 다룬 세 팀은 주로 여성들이 활동하는 팀이라 자연스럽게 여성들의 이야기, 특히 결혼 후 여성들의 일과 사회적 활동에 대한 제한과 그것을 극복하는 이야기가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중랑에 살거들랑 – 중낭자이야기>와 납량라디오 <한강의 흐느낌> 도 이야기 중심의 방송이었다. 중랑구의 역사, 문화, 인물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마을미디어 뻔은 중랑천 이름의 유래를 이야기로 꾸몄다. 아버지 대신 부역에 나간 중낭자는 알고 보니 여자였다는 사실, 토목공사의 비리와 부정부패, 그리고 암행어사 출두 등 심청전과 춘향전 이야기가 묘하게 섞여있어 더 재밌었다. 마을라디오가 아니면 듣기 어려운 이야기다. 한강과 관련한 마을의 이야기 소재를 잘 발굴한 좋은 사례가 될 것 같다. 마을미디어 뻔에는 청소년 참가자들이 있어 마을라디오 활동가들의 평균연령을 확 낮춰줬다. 라디오를 추억하는 세대들이 나이가 들어서일까? 마을미디어 활동가들의 연령은 꽤 놓은 게 사실이다. 젊은 친구들이 더 많이 마을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며 마을에서도 소통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납량라디오라는 말에서 무서운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한국의 귀신 이야기들이 이승에서의 한을 풀지 못한 귀신들의 인간적인 이야기이듯이 성동FM의 <한강의 흐느낌> 역시 한강에 사는 원혼들이라는 주제로 매우 인간적인 귀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특히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의 희생자가 엄마에게 보내는 ‘엄마 잘못이 아니’라는 위로의 말을 듣고 있자니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기억해야할 것들을 기억하는 일이야말로 마을라디오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속한 공동체의 이야기, 우리 이웃의 이야기, 큰 매체에서 해주지 않는 이야기, 하지만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들을 찾아내고 말하는 것, 여기에 마을미디어의 의미가 있다.

다음으로는 음악과 책, 영화 등의 매개를 가지고 재미난 방송을 한 팀들을 소개해보겠다. 첫 번째 팀은 성북FM의 토크와 공연을 함께 보여주는 밴드 빈티지 프랭키다. 성북구에서 역사를 노래하며 방송하는 <빈티지 프랭키의 뮤직라이프> 역시 한강 이야기로 시작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청년들에게 서울의 네온사인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한강철교를 지나며 미래를 상상하던 청년의 모습은 이제 어느덧 중년으로 향하고 있다. 2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까지 4명의 멤버들은 나이와 세대는 달라도 같이 한 시간만큼 호흡이 척척 들어맞았다. 밴드라 하기 무색할 정도로 하나같이 말들을 구성지게 한다고나 할까? 빈티지 프랭키는 각자의 음악 세계도 다양하다. 재즈, 펑크락, 뮤지컬 등의 다른 장르의 음악을 하는 멤버들은 현재 성북구의 역사문화 콘텐츠를 노래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역사문화 콘텐츠 작업의 첫 활동으로 이육사의 시 열 편에 곡을 붙여 노래했다. 10곡 중 ‘강 건너 노래’와 ‘황혼’을 직접 들었는데 ‘좋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음악은 역시 라이브로 들어야 제 맛이다.

 

여름 한 밤에 피아니스트의 라이브 연주를 듣는 일도 무척 행복했다. 공개방송 마지막 방송을 <피아니스트 문용의 다정한 영화음악>으로 정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마지막이라 앵콜까지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밤섬을 배경으로 한 영화 <김씨표류기> 이야기를 하며 메뉴 추천도 했는데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짜장면이 추천된 것에 대해 다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밤섬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밤섬은 원래 무인도가 아닌 유인도였다고 한다. 1960년대까지 400명 이상이 살고 있었다는 밤섬은 여의도 개발 때 한강의 흐름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으로 인해 폭파됐는데 그 주장은 믿기 힘든 구석이 많다. 한강 역시 개발 만능주의가 빚어낸 폐해를 피해갈 수 없었던 시절을 겪었다.

구로FM의 <책순이와 하니의 책이야기>는 한강이라는 주제에 맞는 책을 고르다 의외로 한강이라는 이름의 한강 작가의 책 <채식주의자>를 들고 와서 신선한 재미를 주었다. 초판 후 11년이 지나고 나서 맨부커상을 받은 사실을 보니 좋은 작품은 시간이 지나도 언젠가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것이란 믿음이 생긴다. 지금 하는 일에 대해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는다는 의심이 들거나 마을미디어 활동을 하며 흔들릴 때 후대에 평가받은 많은 작가와 작품들을 생각하며 지금 하는 일의 가치는 언젠가 그 꽃을 피울 것이라 믿으며 묵묵히 지금을 살아야겠다.

마지막으로 노원FM의 <놀아보쑈>와 강서FM의 <하나의 울림이 세상을 움직인다-하울카페>는 공개방송 참여자들과 하나가 되어 신나게 노는 방송을 해줘서 가족들과 친지들과 연인들에게 더 재미난 시간을 선사했다. 뭐니 뭐니해도 내가 한 마디하고 상품 하나 받아가는 것만큼 즐거운 느낌은 없을 것이다.

강서FM은 마을미디어가 마을사람들을 연결해주는 공동체라는 것을 드러내려고 작정한 것 마냥 아이들까지 포함한 대가족들이 참석해서 음식까지 나눠먹는 화기애애한 모습을 연출하며 둘째 날 분위기를 한껏 돋았다. 이 정도 되니 마을라디오 공개방송이 마을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축제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겠지?

 

이틀 간 총 여덟 시간이라는 긴 대장정을 청취자로서 함께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했다. 공개방송 부스 앞에 마련된 빈백에 몸을 누이고 눈앞에 막히는 것 없이 탁 트인 한강변을 바라보면서 방송을 듣고 퀴즈도 풀며 토크에 공감하고 때로는 졸기도 하고 때로는 딴 생각도 하고 그런 여유를 누리면서 피서 못 간 아쉬움을 달래보았다. 솔직히 한강이라 해도 연일 계속되는 폭염 속에 장시간 앉아 있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청취자뿐 아니라 마을라디오 프로그램에 참여한 참가자들 그리고 특히 방송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준비하고 체크하는 일을 맡은 스탭 분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시민들에게 마을미디어를 알릴 수 있었던 흔치 않은 기회

그래도 마을라디오를 알리고 서로 다른 라디오 방송을 한 눈에 비교할 수 있는 이런 기회가 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한강에 놀러 나온 이웃 주민들이나 지방에서 서울에 놀러왔다 찾은 한강에서 마을라디오 한 꼭지라도 들으며 마을라디오라는 게 있구나 알게 되고 내 사연이 소개되는 경험을 하는 것은 시민들에게 마을미디어를 알리는 흔치 않은 기회다. 그렇지만 날씨가 좋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좋을 때에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 공개방송에 참가한 열 개 팀이 얼마나 준비를 많이 했을지 눈에 선하다. 스튜디오 녹음이면 편집이 가능하지만 생방송을 하는 것은 또 다른 부담감이 있었을 텐데 모든 참가자들이 다 프로같이 잘 해줬다. 한강이라는 주제를 담으려고 애쓴 흔적이 잘 드러나지만 한강이라는 주제를 담으려다보니 각 팀들이 갖고 있는 색깔이 조금 덜 드러나지 않았나 하는 느낌도 든다.

한강에 나올 일이 없어서였는지 물빛광장이라고 불리는 공간도 신기했다. 한강을 바로 앞에 두고 우리는 인공적인 물길을 만들어 거기에 발 담그고 놀고 있는 모습은 약간 낯설기도 하면서 발 담그고 편히 놀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좋기도 하다는 생각이 엇갈렸다. 예전에는 한강이 그리 깊지 않아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좋은 장소였다고 하던데 미래의 한강은 또 어떤 모습일지? 마을라디오의 미래는 또 어떨지? 한강에서의 마을라디오 공개방송이 던지는 두 가지 질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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