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_세계] 1975년, 커뮤니티 방송을 시작하다! 밴쿠버 코업라디오

By | 2018-05-08T12:44:24+00:00 2월 1st, 2018|카테고리: 04_월드와이드 마중, 2_기획, 블로그|Tags: , |0 Comments

*필자는 2015년 3월 밴쿠버협동조합라디오 회원으로 참여하여 페미니즘 라디오 쇼인 <The F Word> 프로그램 제작, 40주년 기념행사 준비 및 멤버쉽 드라이브 운영 지원 등 자원활동에 함께했다.


[세계의 커뮤니티 미디어 (2)]

1975년, 커뮤니티 방송을 시작하다! 밴쿠버 코업라디오

박채은(미디어 활동가)


코업라디오 소개
– 1974년 캐나다라디오텔레비전방송위원회 허가. (231개 회원 및 단체 참여)
– 1975년 4월 15일 첫 방송 (방송주파수 102.7 FM, 방송출력 3717와트)
– 1980년 전국 미디어인권상 수상
– 1982년 송신기 이전 (방송출력 5500와트 출력 증강)
– 1984년 주간 풀타임 방송 시작. 밴쿠버 시장, 5월 첫째주 공동체 라디오 주간 선포
– 2000년 공동체경제발전상 수상
– 2001년 방송국 이전. Portland Hotel Society로부터 후원
– 2004년 MOSAIC 인권상 수상
– 2012년 방송 주파수 변경 (방송주파수 100.5 FM, 방송출력 5500와트)
– 2017년 밴쿠버 다운타운 이스트사이드 방송국 리모델링 공사 완료. 이전


코업라디오(Co-op Radio)를 찾아간 첫 날, 봄비가 내렸다. 한국에서 봄비는 추운 겨울을 깨우고 생명을 틔우는 반가움일 수 있지만, 겨우내 비가 내리는 밴쿠버에서는 봄비가 그다지 반가운 손님은 아니다. 일찍 길을 나섰지만, 낯선 곳을 찾아가는 긴장 때문이었는지, 약속 시각이 다 되어서야 방송국 문 앞에 섰다. 방송국 홈페이지에는 이곳이 임시 방송국임을 알려주었다. 그래서인지, 생각했던 것보다 방송국 규모는 크지 않았다.

방송국 문은 잠겨있었지만, 1층 유리문 너머로 방송국 내부를 볼 수 있었다. On Air 사인에 불이 들어와 있다. 스튜디오 바깥에는 오늘 방송의 게스트들인지 여러 사람으로 북적였다. 벨을 누르자 기분 좋은 미소로 한 사람이 문을 열어주었다. 오늘 만나기로 한 방송국 스탭의 이름을 말하자, 복도 끝에서 한 여성이 손을 흔들며 다가온다. 파밀라 벤틀리(Pamela Bentley), 회원 관리와 운영을 담당하는 스탭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팸(Pam)’이라고 소개했다. 시를 쓰는 시인이자, 매주 수요일 오후에 “왁스 포에틱(Wax Poetic)”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DJ이기도 했다. 미국 텍사스가 고향이지만, 지금은 캐나다에 살고 있다. 공동체 라디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공동체 라디오의 매력에 빠졌고, 스탭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녀의 책상 한켠으로 40주년 기념행사 포스터와 티켓, 홍보 스티커들이 쌓여있었다. 그녀는 신나는 목소리로 보여 줄 게 있다며, 컴퓨터 모니터 앞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녀가 직접 가사를 쓰고,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 자원활동가들과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함께 노래를 불러 완성한 뮤직비디오였다. “우리는 큰 기업들에 얽매여 있지 않죠. 그래서 진실을 파헤칠 수 있어요. 공동체의 목소리들, 우리의 라디오 부스 말고는 들을 수 없어요.”

 

▲ 밴쿠버 코업라디오 40주년 기념 뮤직비디오 (제작 시네웍스)
https://vimeo.com/vancouvercoopradio/campaign-film

 코업라디오의 정체성을 담아낸 가사와 다양한 참여자들의 목소리만으로도 이곳이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임을 실감했다. 우연 또는 인연처럼, 그해 봄은 40년을 지나온 공동체 라디오의 과거와 현재를 만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1975년 4월 15일, 공동체 라디오 첫 전파를 쏘다!”

캐나다 공동체 라디오의 시작은 1975년이다. 밴쿠버 코업라디오는 정확히 그 역사의 시작과 일치한다. 그래서 코업라디오는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공동체 라디오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1973년, 코업라디오 설립을 위해 두 개의 단체가 힘을 합했다. 공동체 리서치 활동을 하던 ‘머크레이커스 Muckrakers’와 다른 방송국에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공해왔던 ‘네이버후드 라디오 Neighbourhood Radio’ 였다. 이 두 그룹은 코업라디오를 통해 “기존 상업 프로그램과 공영방송 CBC의 전국적 관점과는 다른 대안을 제공”할 것을 강조하였고, 1974년 캐나다방송위원회(CRTC)로부터 공동체 라디오 허가를 받게 된다. 당시 코업라디오가 제출한 최초의 신청서에는 공동체 방송의 목표가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1) 지역의 문화적, 공공적 현안에 대한 정보를 시민들에게 제공할 것, 2) 지역 예술가와 뮤지션을 위한 표현의 창구를 제공할 것, 3) 소수자와 공동체 그룹들에 더 많은 접근이 가능하도록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할 것”

이 세 가지 목표와 함께 공공의 자산인 전파를 통해서는 어떠한 상업적 광고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켜져 왔다. ‘코업’이라는 이름에서처럼 ‘협동조합’ 라디오로 출발한 이 공동체 방송국은 231명의 첫 조합원들과 함께 밴쿠버 다운타운 이스트사이드의 한 건물에서 방송국 설립을 준비했다. 15년 동안이나 방치된 채 비어 있던 건물은 비둘기 배설물 더미만 가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시내 한 중심지였고, 주요 버스 노선이 지나 접근성이 좋아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운타운 이스트사이드는 사회적 약자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커뮤니티가 있는 곳이었다.

지역 고용 프로그램을 통해 노동자들이 방송국 공사에 참여했고, 초기 방송국 설립에 필요한 자금은 개인들이 대출을 받아서 충당했다. 카펫, 가구 등 방송국에 필요한 대부분은 시민들에게 기부받았다. 그렇게 지역사회의 노력이 모여 스튜디오와 컨트롤 룸이 만들어졌고, 버나비 산 방송 타워에 송신기도 설치되었다. 기술적 문제 때문에 방송국에서 송신탑으로 자동 전송을 할 수 없어서, 개국 초기에는 녹음된 방송 프로그램 테잎을 들고 버스를 타고, 송신탑이 있는 산을 오르는 일을 반복하기도 했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1978년 코업 라디오는 재허가를 받았다. “청취자들에게 문화, 오락, 정보제공의 측면에서 가치있고 대안적인 커뮤니티 서비스를 제공”하였다는 것을 인정받았다. 1980년에는 인권 인식 향상에 대한 공로로 캐나다 “미디어인권상”을 수상하였고, 방송을 개국한지 10여년만인 1984년에는 주중 풀타임 방송 편성을 시작했다.(그 전에는 평일 오후 5시 이후에만 방송을 내보냈었다.) 1986년 밴쿠버 회의에서 전세계공동체라디오연합 아막(AMARC)이 첫 출범을 했고, 코업라디오는 전세계 공동체 라디오 운동과 긴밀히 연대해왔다.

 

▲ 코업라디오는 설립 초기부터 다양한 국적과 인종, 언어적 배경을 지닌 커뮤니티의 방송 참여를 보장했다.

▲ 밴쿠버 도심 대중집회 코업라디오 현장 중계 모습                          ▲ 밴쿠버 지역 뮤지션들의 음악 방송

 

 “참여, 협력, 사회정의, 독립, 그리고 커뮤니티”

코업라디오가 내세우는 중요한 가치들이다. 참여는 “우리가 복무하는 모든 커뮤니티의 완전한 참여와 접근을 보장하기 위해 장벽을 줄이는 것”, 협력은 “다양한 공동체 사이의 개방적이고 상호 존중하는 대화, 커뮤니티 간 협력의 다리를 놓기 위한 노력”, 사회정의는 “진보적인 사회경제적 변화를 추구함으로써 억압적 시스템에 도전하고 모든 이를 위한 기회와 결과의 평등 추구”, 독립은 “상업방송이 지배하는 미디어 세계에서, 구성원이 직접 소유하는 공동체 방송국으로서 상업적 광고, 기업적 이해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성 추구”, 마지막으로 공동체성은 “코업라디오는 자원활동과 다양성에 기반을 두며, 방송국에 참여하는 커뮤니티들의 지원을 통해 존재한다”는 가치 선언이다. 이러한 가치들은 코업라디오의 조직, 재정 그리고 편성 등 방송국 운영 전반에 깃들어 있다.

코업라디오 설립 초기 7년 동안은 거의 완전히 자원활동가들에 의해 운영되었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워커스 포럼(Worker’s Forum)”은 방송국 운영 및 의사결정을 하는 단위였다. 이 포럼은 1981년에 해소되고, 그 이후로는 이사회, 스탭, 그리고 각 위원회가 방송국 운영을 책임지는 핵심 주체가 되었다.

 

▲ 코업라디오 트위터

협동조합으로서 코업라디오는 소수가 아닌 수천 명의 공동 소유자들이 있다. 코업라디오의 멤버가 되려면 일정한 액수의 회비를 내야 하고, 회원은 방송국 운영에 참여할 권리가 주어진다. 방송국의 미래와 관련하여 중요한 의사결정은 총회에서 이루어지며, 매년 총회를 통해 이사회를 구성할 9명을 선출한다. 이사회 멤버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6개월 동안 방송국 활동을 해야한다. 이사회는 방송국 운영 및 재정상태 등을 점검 및 관리하며, 방송국 운영 및 정책을 점검하고 개선할 책임이 있다. 한달에 한번 열리는 이사회는 방송국 제작자와 회원들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어서 누구라도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스탭들은 활동비를 받는 4명의 스탭으로 구성되는데,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멤버쉽 코디네이터, 스튜디오 기술자, 재정 관리자이다. 대표도 없고, 방송국 총괄 경영자도 없다. 스탭들은 방송국에서 독립적 영역을 담당을 하고 있지만, 공동으로 방송을 운영한다. 스탭들은 분야별 위원회들과 긴밀히 연계하여 활동한다.

분야별 위원회는 코업라디오의 핵심 워킹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위원회는 프로그램 제작자, 커뮤니티 구성원, 스탭으로 구성된다. 일상적 운영을 책임지는 운영위원회와 각종 실무위원회가 있다. 실무위원회는 편성, 교육, 재정, 기금, 인사, 기술, 거버넌스 분야의 위원회가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코업라디오는 스탭이 모든 운영을 책임지는 시스템이 아니라 다양한 구조를 통해 자원활동가들과 회원들이 운영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있는 셈이다. 스탭도 풀타임이 아닌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주요 업무를 제외하고는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기도 하고, 다양한 지역사회 일에 참여한다. 주 7일 매일 20시간 방송 편성을 위해 300명이 넘는 프로그램 제작자(자원활동가)들과 90여 개가 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음에도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는 단 한 명이다. 프로그램 제작의 많은 부분이 매뉴얼화되어 있고, 신규 프로그램 제작자 교육도 체계화되어 있다. 오히려 스탭 영역에서 중요한 부분은 수천 명이 넘는 회원관리와 재정, 그리고 자원활동가들에게만 의존할 수 없는 기술 분야이다.

코업라디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이 방송 제작뿐만 아니라 매달 2시간씩 방송국 운영을 도와주는 활동에 의무적으로 참여하도록 한 규칙이었다. 홈페이지와 방송국 게시판에는 수백 명의 제작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정말로 다양한 자원활동을 공지한다. 예를 들자면 이런 활동들이다. 방송국 소식과 방송편성표를 알리는 ‘리스너스 가이드’ 배포하기, 방송 데이터 입력하기, 회원들에게 전화 돌리기, 라이브 밴드 방송 기술 지원하기, 음악 라이브러리 정리, 방송국 청소하기, 재활용 분류하기 등 방송국 운영에 필요한 수십 가지의 일들을 아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코업라디오 홈페이지 자원활동 게시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www.coopradio.org/content/volunteer-opportunities)

한 달에 2시간,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나누는 것, 이 코업라디오만의 전통은 자원활동 그 자체의 의미보다도, 공동체 방송국은 모두의 힘으로 만들어간다는 협동조합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약속의 의미가 더 컸다. 내가 방송국에서 처음 한 자원활동은 40주년 행사 포스터 붙이기와 방송하는 엄마를 따라온 10살 아이와 풍선 놀이를 함께 하는 것이었다.

 

“코업라디오 재원의 60%는 회원들로부터 나온다”

▲ 방송국 스탭 팸이 ‘가을 멤버 드라이브’ 현황을 표시하고 있다. 당시 목표액은 45,000 캐나다달러(한화 약 4천만원)였고, 최종 모금액은 $52,625 였다.

코업라디오의 봄, 가을은 한해 농사를 짓는 것과 같은 아주 중요한 시기이다. 바로 ‘멤버 드라이브’라고 하는 집중 회원 모집 및 후원 프로그램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코업라디오 방송국 운영에 필요한 최소 비용은 한 달에 15,000 캐나다달러(한화 약 1300만 원) 정도이다. 다른 곳도 비슷하겠지만, 급여, 건물 관리비, 수도, 전화비, 장비 송신기 유지비 등에 들어가는 비용이다. (물론 이 비용은 방송국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생존비용이다. 실제로 1년 방송국 전체 사업예산은 약 35만 달러, 우리 돈 약 3억 원 가량 된다.)

코업라디오가 상업광고 또는 영리적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40년 넘게 방송국을 유지해온 비결은 바로 정기적으로 방송국에 회비를 내고 기부하는 수천 명의 회원과 지역 단체들의 힘에 기초해있다. 후원이나 회비는 연중 언제든 가능하지만, 대부분은 봄가을의 ‘멤버쉽 드라이브’를 통해 모인다. 우리로 치면, 후원행사와 비슷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코업라디오만의 펀딩/홍보/방송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참여적 기금 모금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열흘 동안 이어지는 이 멤버쉽 드라이브 기간은 아주 생생하게 다가왔다. 모든 방송 프로그램들은 이 기간에 특별 방송을 진행한다. 이때 특별 방송을 ‘피칭’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기존 회원들과 신규 회원이 될 청취자들에게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에 참여하고 지원할 방법을 얘기한다. 방송 1시간 중 최소 10분은 이러한 피칭에 할애하는데, 단순히 “코업라디오에 후원을 많이 해주세요”라는 홍보성 멘트로 그치지 않았다. 왜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는지, 코업라디오가 얼마나 지역 공동체에서 필요한 매체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이 코업라디오의 회원이 되거나 후원을 했을 때 어떤 가치 만들기에 동참하게 되는지, 저마다의 살아있는 경험과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방송 스토리가 진짜 홍보인 셈이다. 방송을 들으면 후원이 하고 싶어졌다.

후원할 때에는 방송 프로그램을 지정할 수 있다. 코업라디오에는 약 90여 개의 방송프로그램이 편성되고 있는데, 방송을 하기 위해서는 1시간 프로그램 기준 1년에 1000달러 (한화 약 90만원)를 방송국 운영을 위해 내야 한다. 이 비용은 멤버쉽 드라이브 기간에 프로그램 후원으로 들어온 후원금에서 충당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멤버쉽 드라이브 기간은 방송국 운영진, 스탭들만의 몫이 아니라, 모든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내 일처럼 나서는 일이 되었다. 일회성 후원행사가 아니라 기존 회원들을 다시 독려하고, 새로운 회원들을 참여시키는 계기가 되고, 더 중요하게는 매년 2번씩은 공동체 방송을 만드는 이유에 대해서 돌아보게 하는 기회를 주는 셈이다. 그래서 모아지는 후원금 액수보다도 더 큰 의미가 멤버쉽 드라이브에 있다고 느꼈다.

물론, 회원들의 후원 외에도 코업라디오는 밴쿠버 시와 예술위원회의 공공기금도 지원받으며, 다른 민간 기금에서의 펀딩도 받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캐나다 공동체 라디오 기금 ‘라디오미터(Radiometres)’ 프로그램을 통한 지원도 8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라디오미터는 ‘지역프로그램 강화’, ‘자원활동가 교육 및 지원’, ‘공동체 참여’라는 3가지 장기적 목표와 비전을 위한 공동체라디오 사업에 지원하고 있다. 코업라디오는 지난 2016년에도 이 기금을 통해 50,000달러(한화 약 4400만 원)를 공동체 아웃리치 사업비로 지원받았다.

그러나 코업라디오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은 방송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력, 열정을 내어주는 많은 사람의 ‘노동’이다. 그리고 그것은 코업라디오의 살아있는 정체성이기도 하다. 코업라디오는 최근 다시 원래의 방송국 자리로 되돌아갔다. 밴쿠버 다운타운 이스트사이드, 여행책자에는 밴쿠버 시내에서 가장 위험한 게토, 마약 중독자들과 노숙인들이 많은 위험한 곳이라고 소개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최근에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그마저 있던 빈민공동체마저 해체되고 있는 곳이다. 1975년 처음 방송국 장소를 선택한 이유처럼, 지금 코업라디오가 그곳에서 해야 할 역할도 여전하다. 코업라디오의 문이 언제나처럼 사회적 약자들과 공동체들에 열려 있기를 기대하고 희망한다.


참고자료
– 코업라디오 오리엔테이션 및 프로그래머 훈련 자료
– 코업라디오 리스너스 가이드
– 코업라디오 홈페이지 http://www.coopradio.org
– 캐나다공동체라디오기금 홈페이지 http://www.crfc-fcrc.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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