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_인터뷰] 도심 속 숨겨진 동네로의 경험 여정, 마을잡지를 통해 시간의 경관을 유람하다 – 마을잡지 ‘창덕궁 앞 열하나 동네’


송주민(미디어협동조합 와보숑 책임PD)


기자 주  김선아 편집장의 인터뷰를 통해 ‘창덕궁 앞 열하나 동네’(이하 ‘열하나 동네’) 이야기를 담으려 했다. 그는 “함께하는 사진팀, 편집디자이너, 기사작성 참여 멤버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고, 8월2일 운현궁 옆 운니동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 현장에는 각기 다른 재능과 동네에 대한 애정으로 잡지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단체로 둘러앉았다. 참여한 ‘열하나 동네’ 제작 식구들은 아래와 같다.

김선아(편집장), 이혜숙, 손기범, 송경신(메모리k, 사진), 유혜인(편집디자인), 남효정(인턴)


▲창덕궁 앞 열하나동네

창덕궁 ‘앞’이면 서울의 도심 중에 도심이다. 종로와 인사동, 북촌, 명동 등이 바로 인접해 있는, 구체적으로 낙원상가와 종묘, 귀금속 거리 등을 품고 있는 ‘서울 중심지’는 누구나 오고 간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동네’가 있다고? 그것도 11개나? 거대한 숲만 바라보면 작고 아리따운 나무는 놓칠 수 있다. 동네는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

 

“저에게 익선동(열하나 동네 중 하나)은 첫 사무실을 연 공간이었어요. 으리으리하고 높은 상권들 사이에 숨겨진 작은 동네, 저는 디자이너지만 지역과 도시에 대한 관심도 많았어요. 처음 왔을 때(2012년) 오래된 한옥에 주거하시는 분들이 많았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앉아 있는 풍경, 담벼락에 이불이 널려 있는 풍경, 마치 시골동네에 온 느낌이었죠. 바로 앞 종로3가는 큰 번화가에 상업시설이었지만 조금만 여기로 들어서면 서울이 아닌듯한 몽환적인 공간.”

 

‘열하나 동네’ 마을잡지 제작의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는 유혜인 씨의 말이다. 그는 “서울이 덩어리 단위로 개발이 되면서 개발 교집합에 안 들어가는 빈 공간들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여기였다”며 “물론 지금은 주거지가 상업건물들로 바뀌는 과정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제게 창덕궁 앞 동네는 그렇게 각인되어 있다”고 말했다. 사실 서울 사람 누구도 열하나 동네를 잘 모른다. 운니동, 와룡동. 경운동, 권농동, 익선동, 돈의동, 낙원동, 봉익동, 묘동, 종로2가, 종로3가 등으로 구성된, 낙원상가와 종묘 서측의 서순라길로 둘러싸인 오밀조밀 모여 있는 동네는 역사성과 경험 자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소하고 알려진 게 없다는 게 제작진의 판단이다.

 

▲창덕궁 앞 열하나동네

 

하지만 이 동네는 ‘볼매’(보면 볼수록 매력적)이고 눈길과 발길을 끄는 자석 같은 힘이 있다는 것, 계속해서 기록하고 발굴하고 남겨야 한다는 것이 제작진의 바람이었다. 그동안 발행된 ‘열하나 동네’ 한권만 보아도 ‘여기는 그 자체로 많은 이야기와 사연과 경험 자원을 품고 있는 동네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걸 보면, 지역사회 관련 흥미로운 ‘컨텐츠 발굴’에 골머리를 앓는 다른 동네 마을미디어들이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는 ‘선천적인’ 대목이다.

“궁 앞이라는 특성으로 나타나는,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궁중 문화의 흔적들, 근현대사에서 변형된 도시의 공간들, 상업, 유흥, 학원, 주거 공간 등등이 모두 이곳에서 형성되어 나중에 강남, 신촌 등으로 업종별로 기능이 떨어져나간 것이죠. 서울의 1번지격인 공간” 손기범

“2011년부터 동네를 돌아보았지만, 신기하게도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바닥이 드러나지 않는 곳, 예컨대 현대문학 속 공간들과 지금 현재가 공존하는, 알수록 몰랐던 것을 계속 발견하게 되는 곳”(잡지에 상세히 탐방 코스까지 담겨 있으니 꼭 구해서 일독해보시라!) 송경신

“마치 고고학 작업을 하듯 벗기면 계속 재미있는 사연들이 숨겨 있는 동네” 이혜숙

 

 

 

▲창덕궁 앞 열하나동네

 

박제된 공간 아닌 현재도 살아 움직이는 동네시간의 경관을 깊고 자세히 조명하다

 

물론 여기는 ‘박제된 공간’이 아니다. 20~30년 이상 동네를 지키며 살거나 생업을 이어가고 있는, 세대를 이어 가업을 유지해나가고 있는 주민들이 많은 동네가 ‘열하나’이기도 하다. 유랑하는 공간인 대도시 서울에서, 그것도 유랑 중에 유랑하는 공간으로 보이는 이 도심지의 속사정은 “거의 씨족사회에 가까울 정도로 밀접하고 가까운, 어떻게 보면 폐쇄적으로 보일 정도로 서로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동네”란다. 2세 모임도 따로 운영하고 있을 정도라고. 상업 및 오래된 단체, 협회들이 많은 지역의 특성상 직종별로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는 측면이 강하다. 쥬얼리(그러고 보니 필자도 여기서 결혼반지를 맞췄다), 공예, 한복, 악기, 숙박, 음식업 등 ‘열하나 동네’(마을잡지 발행 뿐 아니라 마을만들기 등 포괄적인 지역재생 활동을 벌이고 있는 비영리민간단체이기도 함)에만도 17개 분과 모임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필진 혹은 만화 만평 게재자로, 후원 회원으로, 나아가 광고주(첫 번째로 낙원상가 상인들이 지면을 채워주었다)로도 잡지 제작에 힘을 보태고 있다. 마을미디어 지원사업으로 따지면 2017년에 합류한 ‘새내기’이지만, 이들의 역량과 수준은 기성미디어 못지않은 모습이다.

 

아무리 많은 유무형의 자원과 인재들이 있다 하더라도, 엮이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열하나 동네’를 마을잡지로, 나아가 비영리민간단체로 설립될 수 있게끔 돋움이 역할을 한 사람은 김선아 편집장이다. 그는 건축가로서 2012년부터 ‘낙원핵심상징개선사업’, ‘낙원상가, 돈화문로 일대 활성화를 위한 도시재생 전략계획’ 등의 총괄계획가로 활동하며 이 동네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계획가로서 행정의 정책적 방향에만 흔들거리지 않는 커뮤니티가 있어야 한다는 지향을 가지고 있었고, 그리하여 프로젝트 기반 ‘사업’을 넘어 스스로의 꿈과 가치 지향에 따라 할 수 있는 ‘활동’을 도모했다. 그 첫 번째 작품이 ‘열하나 동네’ 마을잡지였다.

 

▲창덕궁 앞 열하나동네

 

“흘러가고 끝나버린 역사가 아니라 현재도 살아있는 공간이에요. 제 생각에는 유일하게 모든 세대가 아우러져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고 공유할 수 있는 동네예요. 조선시대와 근현대사를 넘어 현재까지 연결되고 진화하고 때로는 왜곡되는 모습들까지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곳, 시간의 경관을 유람하는 곳, 일상 속에서 경험 여정을 떠날 수 있는 곳, 이런 이야기들을 밀착해 지면에 담으며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었죠.”

 

‘열하나 동네’를 통해 이루고픈 김 편집장의 꿈은 소탈하면서도 원대하다. 첫째는 각양각색의 마을 사연들을 발굴하여 주민들이 삶터에 대해, 자기 삶에 대해 자부심을 찾는 것, 그리하여 결핍을 넘어 여유를 찾고 이 여유가 결국에는 지역사회를 위한 공공적인 자원으로 연결되게 하는 것이다. 둘째는 각기 따로 존재하던 열하나 동네 커뮤니티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구체적으로는 실질적인 생업에 도움이 되는, 예컨대 쥬얼리와 공예가 연결되고 숙박과 음식업 상인들이 연결되어 혁신적인 상생 구조를 만드는 네트워크를 형성해내는 것이다.

 

막내 남효정(인턴, 대학생) 씨도 이 마을잡지가 품고 있는 꿈에 대해 덧붙였다.

 

▲창덕궁 앞 열하나동네

 

“결국 주민들에게 애정을 갖게 하는 동네, 우리 지역사회가 가진 다양한 유무형의 자원들을 유심 있게 바라보며 새로운 관심과 몰랐던 자부심 등을 재발견하게 하는 것이 우리가 일궈가고 있는 방향이 아닐까 싶어요, 주민들이 새롭게 자신의 삶과 그의 터전에 대해 조명과 관심을 받는 느낌, 그를 통해 서로를 연결해가는 매개가 되고자 하는 것이죠.”

 

▲창덕궁 앞 열하나동네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