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_리뷰] 벌써 아홉 번째, 이 동네 성북동 이야기(마을잡지 성북동천)


최나현(성북동천 편집위원)

 

 

해는 저무는 중인데 열기가 도무지 식지 않았다. 여름의 절정이라는 8월은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정말 모든 것이 녹아내릴 것만 같은 날씨였다. 큰길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골목을 따라 걸어 들어가자, 막다른 끝에서 ‘마로다연’을 발견할 수 있었다. 좁은 길을 따라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손으로는 연신 부채질을 했지만 눈으로, 또 가벼운 인사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환히 웃었다. 기다리던 날이었다.

 

2017년 7월 28일 오후 7시, 성북동천이 발행하는 마을잡지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9호의 출간기념회가 마로다연(성북로8길 12-23)에서 있었다. 성북동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곳에서 마을 잡지 출간을 축하하고, 함께 글을 읽고 나누는 자리가 될 것이라던 안내글이 참 잘 어울린다 싶은 장소였다. 대문을 들어서자 자그마한 중정이 한눈에 들어왔다.

 

 

최영환 작가의 인사와 기고글 ‘어딘가에 아무 곳도 아닌’ 부분 낭독을 시작으로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9호 출간기념회가 시작되었다. 이번 호에 글을 실은 분들을 비롯해 표지그림을 그린 화가, 한결 같은 편집자, 5년 무사고의 인쇄소 대표, 편집위원 등 다양한 사람들이 고즈넉한 한옥 마당을 채웠고, 시의원과 애독자의 줄을 이은 축하 방문은 더위를 무색하게 할 만큼이었다. 행사 진행 틈틈이 사람들은 동네 떡집의 소담스런 떡을 나누어 먹으며 서로의 근황을 묻기도 하고, 기고자들이 낭독하는 내용을 책에서 찾아 눈으로 따라가며 읽기도 했다. 무더운 데다 습하기까지 했던 날씨 탓에 땀방울이 머리카락을 타고 얼굴로 목으로 연신 흘러내렸지만, 누구 하나 표정 흐려지는 사람 없이 밝은 분위기의 자리가 계속되었다.

 

잡지에 글을 실은 분들이 각자의 것에서 한두 구절씩을 정해 낭독을 하는 인사가 끝나고, 초대공연 순서가 왔다. 팀 이름은 <연희별곡>. 마루에 단정하게 앉은 연주자는 차분한 음성으로 팀과 악기, 음악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중정에 둘러선 사람들이 모두 약속한 듯이 무대 쪽으로 한 걸음 나아가 <연희별곡>의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가야금, 대금, 퍼커션의 특이한 구성이 더욱 호기심을 자극했다. 새로운 악기의 등장은 우리 모두의 감탄을 자아냈고, 고운 선율이 이어지자 사람들은 하나 둘 눈을 감고 음악과 계절의 향기에 취해 깊이 빠져드는 모습이었다.

두 번째 곡의 연주가 시작될 때쯤 나는 잠시 대문 밖으로 나왔다. 크지 않은 한옥의 오래된 처마 끝 곡선을 타고 흘러나오는 가야금 소리와 간간히 떨어지는 빗소리가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괜스레 마로다연 담 옆을 서성이면서 현의 울림을 좀 더 오래 붙들어 책 한 줄 더 읽어 내렸으면 싶었다.

 

 

나는 갓 나온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9호를 펼쳐 들었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바뀌어 가는데 벌써 아홉 번째, ‘같은 동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성북동은 변화의 바람 그 한가운데에 있어 외부로부터도 주목을 많이 받는 동네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곳곳의 건물들이 빠르게 달라졌다. 그리고 그 사이, 사라지는 것과 새로 들어서는 것의 간극이 주민들에게도 적지 않은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성북동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는 창간호에서도 가장 먼저, 조금은 무겁게 다루어질 정도로 중요한 문제였고, 한옥 철거, 성북동 가로수 벌목 등 동네를 둘러싼 크고 작은 일들 역시 그 사이 잡지에서 다루어 온 이슈였다.

이 잡지의 원고 교정교열을 담당한 지도 벌써 몇 해가 지났다. 책으로 나오기 전에 몇 번을 읽고 또 읽는 것이 일이지만, 그래도 글이 모여 한 권의 종이책으로 나오면 기분이 늘 색다르다. 실상은 알고 보는 글이지만 늘 새 글처럼, 처음 읽는 책처럼 그렇게 성북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글을 새롭게 읽어 본다.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9호는 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가만 있어보자, 8호는 어땠더라?

돌담 아래를 오가는 내 발걸음이 느긋하게 시간 여행에 빠져있다 보니 가야금은 어느 새 대금으로 순서가 달라져 있었고, 조금씩 내리던 비도 그쳐 마로다연의 주변에 거뭇거뭇한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행사가 거의 끝나가는 모양이었다.

출간기념회의 마무리는 언제나 ‘디미방’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디미방 역시 여느 가게들처럼 성북동에서의 시절을 접고 올 8월 이후에는 동소문동으로 그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고 하였다. 5년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사이 디미방을 둘러싸고 있던 많은 조건들이 달라져 있었다.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힘이다. 사람도 공간도 글도, 그 속도와 방향만 달리할 뿐 변화한다는 속성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중에 우리가 만드는 이 잡지가 꾸준한 생명력으로 아홉이라는 수를 세어 왔다는 것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의미라고, 비단 글을 쓰고 모으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때가 되면 찾아주고 읽어주는 모든 사람들이 같이 만든 책이라서 참 좋다고, 꼭 힘주어 이야기하고 싶다.

마로다연에서 마지막 정리를 하고 나서는 길에 주인분과 인사를 나누는데, 직접 손질해 말리신 것이라며 꽃차 한 병을 내 손에 몰래 쥐어 주셨다. 동네에 온 지 얼마 안 되었다, 시간이 되고 생각이 나면 꼭 들러라, 동네 친구하자, 그 말씀들이 정성과 시간이 깃든 꽃송이보다 더 향기로웠다. 나는 조금 더 깊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렸다.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는 2013년 11월 1호 발간을 시작으로 올해 5년차가 된 마을잡지로, 이날은 아홉 번째 잡지 발간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이번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9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7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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